당장 재협상에 나서는 것을 제외하곤, 상상 가능한 모든 대책이 다 담겼다. 어떻게 해서든 성난 민심을 잠재우고, 하루 앞으로 다가온 국회 청문회를 탈없이 마무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하지만 몇몇 대책을 제외하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자는 면피성 대책이 대부분이다. 6일 당정 협의 후 한나라당의 확신에 찬 발표와는 달리, 정부는 대책의 현실성에 대해 말끝을 흐리고 있다. “검토는 해보겠다”는 단서가 달리기는 했지만, 현실적인 수단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대책의 핵심은 재협상이다. 물론 지금 당장 재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은 당정 협의에서 향후 광우병 발생 위험이 현저하게 높아졌다고 판단되는 경우, 혹은 광우병이 발생하는 경우 재협상 방안을 검토하는 선에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재협상 요구가 빗발치는 만큼, 여지를 남겨놓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민심을 달래기 위한 립서비스의 성격이 짙다. 이미 양국 대표가 합의문에 서명한 이상,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다고 해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의 지위를 바꾸지 않는 한 재협상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협상 수석대표였던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차관보도 이날 토론회에서 재협상 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민 차관보는 “재협상은 불가능하되 다만 특별한 상황이 있을 경우 수입위생조건 개정 요구는 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새로운 과학적 근거가 나오거나, 미국의 OIE 지위가 바뀌는 경우”라고 말했다. 사실상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은 또 광우병 발생 때 미국산 쇠고기를 전수 조사하거나 수입을 전면 중단하는 방안에 대해 정부에 검토를 요구했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 검역당국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실시하는 개봉 검사는 1%에 대한 샘플 조사. 향후 검역 강화를 위해 3%로 대폭 높이겠다고 발표한 마당이다.
100% 전수 조사를 위해서는 인력이 현재보다 30배 이상 소요된다. 전 세계적으로 전수 검사의 유례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 측과 통상 마찰 소지도 다분하다. 농식품부 측은 “광우병이 발생하면 검역 비율을 일부 높일 수 있고, 극단적으론 100% 전수 조사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부정적 뉘앙스가 강했다.
국립수의과학연구원 관계자는 “인력, 시간 등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하면 전수 검사는 불가능에 가깝고, 통상 마찰 우려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수입 전면 중단은 재협상 없이는 불가능한 조치다. 현재의 수입위생조건으로는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사실 만으로 수입을 금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나마 실효성과 현실성을 갖춘 조치는 원산지 표시의무 확대다. 당정은 원산지 표시의무 대상 음식점을 현행 300㎡(90평 가량) 규모 식당에서 학교와 직장, 군대 등 집단 급식소를 포함한 모든 식당으로 확대한다는데 합의했다.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걸러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소규모 식당에 대한 단속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모든 부위의 특정위험물질(SRM)에 대해 월령 표시를 의무화하고, 연령 확인을 할 수 없는 경우 전량 반송 조치하는 방안도 비교적 실현 가능성이 높다. 30개월을 기준으로 SRM 허용 범위가 달라지도록 한 수입위생조건의 해석 문제인 만큼, 미국 측의 협조를 받아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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