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스트랜드 / 한길사
5월의 햇볕에,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그림이 떠오른다. 호퍼에 관한 것으로 국내에 나와 있는 책은 작은 화집 성격의 포트폴리오 북 한 권을 제외하면, 딱 두 권이다. 물론 둘 다 번역서다.
그 중 한 권이 지난해말에 나온 <빈 방의 빛> 이다. 얼마 전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가 한 신문에 호퍼에 대한 책이 “딸랑 한 권인 나라”에서 다행히 두번째 책이 번역돼 “부끄러움은 면하게 되었다”고 쓴 걸 봤다. 우리의 문화적 지층의 얕음을 호퍼의 경우를 통해 질타한 그 칼럼을 그는 “현실의 애매하고 진부하고 악랄한 리얼리티에 실망한 자들이여, 호퍼를 봐라!”며 끝맺고 있었다. 빈>
그만큼 덜 알려졌지만, 사실 ‘나이트호크’나 ‘이른 일요일 아침’ 혹은 ‘햇볕 속의 여자’나 ‘바다 옆의 방’ 같은 호퍼의 작품들은 복제물로 우리가 한번쯤은 보고 지나쳤을 법한 그림들이다. 추상과 팝아트가 휩쓸던 미국 현대미술에서 호퍼는 1920~60년대 미국의 일상을 구상으로 그린 별난 화가다.
도로변의 주유소나 철로변의 집, 밤의 선술집이나 아침의 모텔방 등이 주된 그림의 배경이다. 거기에 빛이 비친다. 그 빛이야말로 호퍼 그림의 핵심이고 비밀이다. 그림 속 인물의 바닥 모를 상실감이나 소외감, 웬지모를 깊은 공허감이나 부재의 느낌이 그 빛을 통해 화면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느낌은 캔버스 바깥에서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그대로 옮아올 듯하다.
<빈 방의 빛> 의 저자인 미국의 계관시인 마크 스트랜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길거리에는 차도 다니지 않는다. 부동(不動)과 정적(靜寂)의 몽상적인 조화로 마술적인 순간은 길게 늘어나고, 그 앞에 선 우리는 특별히 허락된 목격자들이다… 호퍼의 그림은… 실제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닌, ‘삶의 전과 후의 시간’을 그린 빈 공간이다.” 호퍼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호사와 함께, 시인의 눈과 글이 그림의 안팎을 명징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 주는, ‘한국에서 나온 호퍼에 관한 두번째 책’이다. 빈>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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