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일었던 '살인 파도'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고가 발생한 지 만 하루가 지나도록 4일 충남 보령 앞 바다에서 발생한 바닷물 범람 사고의 원인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상당국은"인공구조물이나 지형적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으나 너울성 파도에 의한 것이라는 관측도 여전히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단 강풍, 지진 등에 의한 '해일' 가능성은 제외됐다. 사고 당시 바람의 세기는 초속 3.9m로 약했고, 물결도 0.4m로 잔잔하게 일어 해일이 생길 만한 이상 징후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기상청은 방파제 등 인공구조물과 서해안의 강한 조류(潮流ㆍ밀물과 썰물), 수심이 얕고 움푹 패인 만(灣)이라는 지형적 특수성 등 3박자가 맞아떨어져 생긴 이상 기상 현상으로 보고 있다.
5일 사고 현장을 조사한 김병선 기상청 기상기술기반국장은 "사고 당시 촬영된 폐쇄회로(CC)TV와 기상 관측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방조제가 밀물의 흐름을 방해해 일시적으로 높은 파도를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완만한 경사를 지닌 자연상태의 해안은 파도의 충격을 분산하지만 인공 구조물은 파도의 흐름(파ㆍwave)을 역류시킨다. 이 때 역류된 파는 간만의 차가 6~7m에 달하는 강한 조류와 부딪치게 되면 순간적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공명 효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해안 곳곳에는 비슷한 요건을 갖춘 지형이 얼마든지 있고, 사고 지점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인공 구조물만을 원인으로 꼽기에는 무리라는 분석도 많다. 너울성 파도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의견이 비등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너울성 파도는 세기가 약한 대신 파도의 폭(최대 100m)과 주기(최대 5~6분)가 길어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수심이 얕은 연안에 가까워지면서 해저 지형과의 마찰력에 의해 순식간에 파고와 유속이 커져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특징이다. 잠잠한 듯 보였던 파도가 갑자기 몰아닥친다는 점에서 보령 사고와 유사하다.
사고 발생 5시간여 전에 인천 대청도 부근에서 바닷물이 범람해 주민들이 대피 소동을 겪은 일도 동일한 너울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각에 동의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조양기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너울의 피해는 이번 사고처럼 국지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전남 영광 법성포 해안에 밀려와 120여 채의 가옥 침수 피해를 내고 2월 강원도 강릉 방파제를 덮쳐 3명을 숨지게 한 너울성 파도에 비해 피해 범위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박광순 한국해양연구원 방재연구사업단장도 "파도의 전파 속도는 매우 빨라 대청도에서 발생한 너울이 죽도에 영향을 미쳤다면 1시간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단장은 "관측자료만 봐서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아 원인을 꼭 집어서 말하기 어렵다"며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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