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호 등 지음/푸른역사 발행ㆍ464쪽ㆍ2만원
미국이 급기야 밥상까지 올라왔다. 지금 네티즌의 인기 검색어는 단연 미국산 소고기다. 최근 국회에서 어떤 의원이 “한국인의 유전자 구조는 광우병에 취약한 탓에, 광우병 걸린 미국산 소를 한국인이 먹을 경우 95%가 발병한다”며 열변을 토했던 것도 궤를 같이 한다.
“영어는 발음이 중요하다”며 “오렌지가 아닌 아륀지”라고 했던 이 정부의 고위급 인사는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미국 강박증을 새삼 증명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미국은 무엇인가?
인터넷 백과 사전인 위키피디아는 미국화(Americanization)를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으로 나눈다. 부정적 미국화란 미국의 영향 아래 강제적으로 편입될 때 야기되는 일련의 현상으로, 해방을 전후해 남한에서 미국의 이름으로 벌어졌던 모든 것들이 사실 여기에 포함된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의 미국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은 곧 20세기 이후의 우리 역사에 대한 총체적 반성과 전망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을 베끼고 따라잡으려 하는 양상을 추적하고 분석한다. 한국아메리카학회는 국제 학술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성과물을 축적해 왔다. 대한제국 이후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미국화의 실상을 분석한 교수 8명의 논문을 취합한 책은 미국화라는 문제를 전방위적ㆍ대중적으로 고찰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인들의 실제적 의식 속에서 미국은 긍정적으로 각인돼 있기 일쑤다. 선교사, 미군, 대중 매체, 영어로 미국을 접촉한 관료나 지식인 등의 인식 모델은 아무 저항 없이 일반 국민에게 주입됐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산업화 이전 시기(1945~60)의 ‘김미 쪼꼬렛’ 정서, 압축적 산업 사회 형성기(1961~85)의 ‘잘 살아 보세’ 정서, 그리고 욕망과 소비(1980년대 후반 이후)의 시기로 구분되는 확대 재생산의 길을 충실히 걸어 왔다.
한편 대중 문화 측면에서의 미국화는 두 가지 층위가 공존해 왔다. 미국화의 최하위 문화(폭력, 성폭력, 매춘, 밀수 등)가 있던 기지촌과 여유로운 파티 문화 등으로 나뉘어 ‘전방위적 흉내 내기’를 자극하며 한국인들의 심성을 파고 들었다. 그것은 이후 무비판적 추종과 비판적 청년 문화로 나뉘어 대립 발전하다, 매체가 문화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소비 편의주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미디어의 시대(1981~1992)로 접어든 이후 현재까지 한국은 미국화와 반미국화의 풍경으로 얼룩져 있다.
이를테면 뽕짝의 소비층인 구세대가 벌이는 친미 시위에, 각종 팝 문화의 소비층인 신세대는 반미의 함성으로 맞선다. 책은 이를 두고 미국 문화에 대해 ‘혼성성과 능동성’이 혼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소비향락 일변도로 흐르고 만 탓에 결국 한류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논리에 복속되고 말았다는 지적을 접하게 된다.
책은 해방 이후 민중신학까지 포함한 개신교의 발전에는 미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보수 진영의 교회 성장주의가 미국적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적극적 사고’에 뿌리 두고 있다고 서술한다. 그같이 과도한 미국화에 함몰돼 있는 한국의 개신교는 개신교 수용 120년이 지났으나 진정한 ‘한국적 신학’이 없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하버드대의 옌칭연구소를 중심으로 미국 학계의 근대화론을 이식한 우리 사회과학계도 그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책은 강조한다.
미국에 대한 인식의 수은주로서 책은 각종 언론의 대응 양상에 주목한다. 박정희 정권 시기 ‘정권 차원의 반미’를 고려해 미국 비판의 글을 늘렸던 언론들이 전두환 정권 들어서는 ‘정권 차원의 친미’를 적극 추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언론은 “세계화로 위장된 미국화에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게 된다. IMF 관리 체제에 대한 범국민적 거부가 불러온 결과였다.
그러나 여전히 네오콘들은 “미국은 신세계, 유럽은 구세계”라는 식의 인식을 더욱 분명하게 하면서 미국과 유럽 사이에 구분선을 긋고 미국식 모델을 전파 또는 강요하고 있다. 9ㆍ11 사태 이후 잠시 가라앉았던 반미주의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되살아 난 것은 그래서다. 책은 한국이 ‘미국화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성찰에 게으르지 않았는지 묻는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