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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박물관인의 처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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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박물관인의 처세관

입력
2008.05.0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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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은 박물관에서도 각종 행사가 많은 여왕의 달이다. 계절적으로 나들이 하기에 적당하고,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많기 때문에 박물관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관람객을 맞이하는 박물관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바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행사를 준비하는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염려하여 다른 때보다 더 유심히 박물관 안팎과 직원들의 동태를 살펴보느라 바빠진다.

며칠 전에도 어깨가 쭉 처져 있는 직원 한 사람을 한동안 지켜보기만 하다가 따로 관장실로 불렀다. 차를 한 잔 나누면서 “무슨 일이 있어?”라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박물관 사람들은 어떻게 처세를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의외였다. 박물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고, 박물관도 엄격한 위계가 있는 공무원 조직이고 보니 적절한 답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 얘기는 아닌데…개인보다는 조직, 조직보다는 사회를 생각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곧 최고의 처세라고 생각한다네”라고 얘기해 주었다.

사실 그런 답변은 박물관 선배들로부터 전해 듣고, 충분히 공감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묵 진홍섭 선생님이었다. 그는 평생을 박물관과 인연을 맺으면서 개성박물관을 지켰고, 경주박물관의 관장으로 계시면서 한국전쟁 직후의 어려운 시기에도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학교를 만들어 운영하셨다.

나는 선생님께서 개인보다는 박물관을, 박물관보다는 사회를 생각하면서 생활해 오셨기 때문에 가난한 공무원생활도 이겨내셨고, 이 사회에도 훌륭한 업적과 평판을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그렇게 보충 설명을 해주면서 박물관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야만 하고, 지역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만 하는 관장으로서의 소명의식과 고민까지 얘기해 주었다.

그렇지만 직원은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직원은 직원들 간의 조화로운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보았던 것이다. 박물관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왔고, 그 성과가 고스란히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니 보람을 느낀다고 평소에 이야기를 해 온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내 답변이 한참 빗나갔던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얘기를 해 주었어야 했을까?’라고 오랜 시간을 자문해 보니, 역시 관건은 ‘타인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얘기가 끝났던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나도 못하고 있는 것을 자신있게 얘기해줄 수 있었을까?’ 라는 자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박물관과 지역사회를 위한다고 꽤나 일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 살뜰하게 대해 주지도 못했고 그들 입장에서 이해해 주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그제서야 나도 박물관인의 처세가 어떠해야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즉 먼저 사람을 생각해야 하고, 그 다음은 박물관을 생각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자기가 몸 담고 있는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곧 ‘처세’였음을 말이다.

결국 수많은 책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었던 나의 불안한 처세관이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서 방점이 찍히게 되었다.

유병하 춘천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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