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이다 마치 지음ㆍ박채연 옮김/랜덤하우스 발행ㆍ324쪽ㆍ1만2,000원
먼 나라 혁명가 체 게바라의 열풍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꼭 10년이 되던 2000년, <파리지앵> 의 기자 장 코르미에가 쓴 평전의 인기로 시작됐다. 스스로 진보적 지식인이라 칭하는 이들 뿐 아니라, ‘체’를 모르는 세대에게도 그를 상징하는 그림과 쿠바혁명의 일화들은 시대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파리지앵>
혁명의 동의어가 되어 버린 체 게바라. 올 6월이면 그의 탄생 80주년이다. 마치 때를 맞추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체의 짧은 생애를 잠시나마 동반했던 두번째 부인 알레이다 마치의 회고록 <체che, 회상> 이 출간했다. 체che,>
마치는 쿠바 혁명의 와중이던 1958년 시에라 델 에스캄브라이에서 이념적 동지로 체를 만나 사랑을 싹 틔웠고, 체가 67년 미국이 배후에 있던 볼리비아군에 총살당하기까지 8년을 부부로 함께하며 체의 네 자녀를 낳아 길렀다.
남편의 사후 40여 년 만에 겨우 입을 연 마치는 책을 통해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음을 택하겠다’던 체의 정신을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사진, 편지, 엽서 등과 함께 털어놓았다.
마치의 자서전은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인 성격이 짙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일반에 알려진 체 게바라에 대한 상식을 뒤집으려는 의도도 없다. 다만 몇 가지 ‘오해’ 를 바로 잡는다.
마치는 책에서 체 게바라가 죽음에 이르게 된 볼리비아 행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카스트로와의 불화 때문이 아니고 카스트로의 은밀한 지원을 받아 이뤄진 것이라 증언한다.
사랑하는 여자의 시각으로 들여다 본 혁명가는 가정을 걱정하고, 아이를 생각하는 가장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너무나 평범한 남자이기도 하다. 마치에게 보낸 체의 편지는 “가까이에 적도 없고 눈앞에 꼴 보기 싫은 자들도 없이 갇혀 있는 지금 너무도 아프게 당신이 필요하오.
생리적으로도 그렇다오.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늘 그것들을 진정시켜주는 것은 아니라오”라며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66년 아바나의 안가에서 체 게바라가 노인으로 변장해 몰래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은 글을 읽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체의 아내는 자신을 돈키호테의 사랑을 받은 둘시네아 또는 돈키호테를 수행한 산초 판사라고 부른다. 책에서 그녀는 “이 둘은 내 삶의 동반자였던 현대판 돈키호테를 따르고자 한 인물이었다. 그는 세르반테스의 인물에 부드러움이 가미된 인물이었고, 비록 다른 상황이긴 해도 같은 목적을 위해 새로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21세기에도 꾸준히 ‘체’를 읽도록 하는 힘에 대해 솔직한 답변을 주는 책이다. 기존의 책들에서 볼 수 없었던 인간 ‘체’가 곳곳에 스며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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