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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영화관' 거장 35명의 옴니버스… 110분동안 무려 3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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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영화관' 거장 35명의 옴니버스… 110분동안 무려 32편

입력
2008.05.0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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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들 각자의 영화관. 프로듀서: 질 자콥. 감독: ….

영화 기사 쓰면서 감독 이름을 생략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지면 사정 때문이다. 무려 35명, 게다가 모두 나름의 타이틀을 지닌 거장이다. 영화광이라면 이들 가운데 몇몇에 대해서는 팬을 자처할 것이며, 몇몇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을 것이다. 단언컨대 영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연출진이다.

이 옴니버스를 기획한 사람은 세계 영화계의 최고 권력자 질 자콥.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빔 벤더스, 왕자웨이 등의 신예를 거장의 반열에 올린 사람이다.

그의 지휘 아래 5개 대륙 25개 국의 대표선수들이 각자의 영화관(觀), 또는 영화관(館)에 얽힌 추억을 각각 3분의 러닝타임에 축약했다. 마치 고급 위스키를 한 모금씩 병입한 미니어처 양주 세트 같다.

작품은 거장들의 시선을 보여줌과 동시에, 관객들이 스스로의 영화 취향을 확인하는 문진표 역할을 한다.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소재와 어법의 단편들 속에 ‘꽂히는’ 영화가 한둘은 있을 것이다. 그걸 확인하고 다른 관객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 감상을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110분의 상영시간 동안 총 32번의 크레디트가 뜨고 진다. 15일 개봉. 전체관람가.

삼거리 극장의 추억

기타노 다케시(일본)의 ‘어느 좋은 날’은 밀레의 그림처럼 소박한 시골 극장을 그린다. 신작로를 따라 자전거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다가오고, 기타노의 영화 <키즈 리턴> 이 상영되는 극장으로 농부가 들어선다. 필름을 태워먹으며 영사기를 돌리는 기사는 바로 기타노 감독이다.

섬세한 감정 표현의 대가 클로드 를루슈(프랑스)의 ‘바로 앞의 극장’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자신의 영화 편력을 보여준다. 사랑을 고백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가 뮤지컬 배우 프레드 아스테어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겹쳐 꿈인 듯 펼쳐진다. 소외된 인간을 직핍하게 그려내는 구스 반 산트(미국)에게도 영화관은 첫사랑의 배경이다(‘첫 키스’).

거장들의 유쾌한 수다

라스 폰 트리에(덴마크)의 ‘그 남자의 직업’은 평론가에 대한 감독의 시선을 유쾌하게 비틀어 표현한다. 어두컴컴한 상영관, 자칭 평론가는 정작 영화에는 관심도 없이 잡담만 늘어놓는다. “당신 직업은 뭐냐”고 묻는 그 평론가, 옆에 앉은 평론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망치를 들어 그를 내려친다. 무자비하고 무책임한 평론가 역을 트리에 감독이 직접 연기했다.

로만 폴란스키(프랑스)의 ‘에로틱 영화 보기’는 마지막 반전이 즐거운 영화.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격정적 베드신을 감상하는 중년 부부는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그가 내는 신음소리는 성적 흥분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짧은 영상 긴 여운

데이빗 크로넨버그(캐나다)의 ‘최후의 극장에서 자살한 마지막 유태인’은 단 3분의 상영시간으로도 관객을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거장의 내공을 보여준다. 자살을 기도하는 유태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영상매체가 뽑아낼 수 있는 긴장의 극대치를 보여준다.

아톰 에고이앙(캐나다)의 ‘동시 상영 세편’은 휴대폰 영상 메시지를 통해 여러 편의 영화를 동시에 감상하는 모습을 담았다. 변화하는 현대 문명 속에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의 의미를 응시한다.

뉴저먼 시네마의 거장 빔 벤더스(독일)는 3분이라는 시간 제약 속에 세상에 대한 진중한 시선을 담는 데 성공한다. 그의 ‘평화 속 전쟁’은 100년의 식민 지배와 30년의 군부독재를 겪은 뒤 찾아온 아프리카 마을의 평화를 조악한 영화관의 풍경을 통해 그렸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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