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컴퓨터 프로그래머 이모(30) 씨는 지난해 11월 생활정보지를 읽다가 ‘신용 불량자에게도 연 8~11% 이자로 신용 대출을 한다’는 광고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아버지 치료비와 생활비로 돈이 필요했으나, 돈을 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전화했더니, 한 남자가 “적금을 들고 1회분을 입금하면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또 “대출을 원하면 인터넷 뱅킹에 가입하고 주민등록번호ㆍ비밀번호ㆍ보안카드번호도 알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미심쩍었지만 “입금 전에 비밀번호를 바꾸고 보안카드 분실 신고를 하면 안전하다”는 수화기 속 남자의 말을 믿고, 개인 정보를 알려줬다. 다음날 4,000만원을 대출 받으려고 그 10%인 400만원을 입금했다. 미리 비밀번호도 바꾸고 보안카드도 분실 신고했다. 그러나 4,000만원 대출은커녕, 입금했던 400만원마저 사라졌다. 인터넷 뱅킹의 ‘예약 이체’ 기능을 이용한 신종 사기에 걸린 것이다.
경찰청사이버대응센터는 2일 이씨를 속인 것과 똑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18명으로부터 9,000여만원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이모(37)씨를 구속했다. 범행을 도운 아내 임모(35)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부부는 사전에 날짜와 시간, 금액을 정해 놓으면 인터넷 뱅킹으로 자금이 계좌 이체되는 ‘예약 이체’ 기능을 악용했다. 예약 이체의 경우, 계좌 비밀번호와 보안카드를 나중에 바꿔도, 그 이전에 설정한 예약에 대해서는 돈이 자동으로 빠져 나간다.
이씨 부부는 피해자들이 알려준 개인 정보로 인터넷 뱅킹에 접속, 예약 이체를 설정해 자신들의 대포 통장계좌로 옮겨지도록 했다. 피해자들이 비밀번호 등을 바꾼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당초 해킹 범죄라고 신고했지만, 수사 결과 인터넷 뱅킹의 헛점을 이용한 신종 수법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피해자들은 금융기관에서 돈일 빌리기에는 신용도가 낮은 영세민이었으며, 일부는 그나마 갖고 있던 돈까지 날린 충격으로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경찰청은 동일 수법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안카드 분실 신고나 비밀번호를 변경하면 예약이체ㆍ자동이체 내역을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자동 공지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해 줄 것을 금융감독 당국과 은행에 요청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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