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AI 직격탄 닭·오리 전문점 가보니…"4일 동안 3마리 팔아 마치 목 비틀리는 기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AI 직격탄 닭·오리 전문점 가보니…"4일 동안 3마리 팔아 마치 목 비틀리는 기분"

입력
2008.05.06 00:27
0 0

“낮술에 취해 삽니다.”

3일 낮 12시 서울 청량리역 부근의 로스구이 전문점인 ‘대동강 오리집’ 주인 황영근(53)씨에게 “요즘 장사가 어떠냐”고 묻자 푸념 섞인 목소리로 돌아온 답변이다. 지하철역 근처인데다 주말이어서 여느 때 같으면 한창 손님으로 북적대야 할 시간이었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는 30여분 동안 단 한명의 손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요새 오리집 하는 사람치고 제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요? 장부 좀 보세요. 4일 동안 4만원짜리 3마리 팔았습니다. 이래서 월세 300만원을 어떻게 냅니까? 저녁에도 8시면 문을 닫아요. 음식점이 한창 일할 시간에 전기세 아끼려고 문을 닫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목에 실핏줄을 세워가며 계속되는 황씨의 하소연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여파로 오리와 닭을 취급하는 음식업계가 줄줄이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

5일 한국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초 전북에서 발생한 AI가 한 달 넘게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5만여 개 오리와 닭 전문 음식점들의 매출이 평소의 60% 이하로 떨어졌다.

서울 성북구 정릉1동 아파트 단지 옆에서 15년째 가족과 함께 유황오리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강흥용(66)씨는 “이제 노는 것도 지쳤다”며 “마누라와 아들, 며느리만 빼고 남은 종업원 6명을 모두 내보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평소 주말이면 못 팔아도 90마리 정도는 나갔는데, 요즘은 한두 마리 파는 것도 힘겹다”면서 “앞으로 식구들하고 뭘 벌어 먹고 살아야 할지, 눈 앞이 캄캄할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닭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치킨집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마포에서 둘둘치킨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경자(53)씨는 “12년 동안 닭 장사를 해오면서 이렇게 불황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배달 주문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가게에서 닭 요리를 안주로 시키는 손님도 절반 이하로 줄어 메뉴에 닭을 대체할 수 있는 안주를 많이 넣고 있다”고 전했다.

음식업계는 AI 확산에 따른 피해가 막대한 만큼, 생산농가처럼 직접적인 피해보상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인 지원책이라도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리와 닭고기가 안전하다는 캠페인에 정부 관련부처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음식업중앙회 고인식 회장은 “AI 발병으로 오리와 닭을 취급하는 음식업계가 고사직전에 있는데도 관계당국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오리와 닭의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중ㆍ장기적인 지원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오리와 닭고기를 익혀먹으면 안전하다는 발언만 되풀이할 뿐, 음식업계 지원책 마련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이병권 사무관은 “AI는 호흡기성 질병이기 때문에 먹는 음식을 통해서는 감염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익힌 음식을 먹고 감염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소비자들의 과민 반응을 경계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