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 폭발음이 들리더니 갑자기 집채 만한 파도가 사람들을 덮쳤어요.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대피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4일 오후 충남 보령시 남포면 죽도 방파제에서 바닷물 범람 사고로 변을 당한 22명의 사망ㆍ실종자 가족들은 "믿을 수 없다"며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사망ㆍ실종자들은 이날 대부분 황금 연휴를 맞아 낚시와 서해안 관광을 즐기려던 가족 단위 관광객이었다.
특히 숨진 8명 중에는 5살과 9살짜리 어린이 2명이 포함됐고, 중상자 중에도 아이들이 많아 어린이 날을 앞두고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촌 가족과 함께 고향을 찾았다 사촌 형 등을 파도에 앗겨버린 이용구(45)씨는 "오후1시께 방파제로 나갔다 바다를 구경하러 방파제를 내려섰는데 갑자기 바닷물이 솟구치더니 사람들을 쓸어갔다"고 전했다.
이씨는 순간적으로 방파제와 포장마차를 연결한 쇠파이프를 잡고 목숨을 건졌지만 함께 바다구경에 나섰던 사촌 형 추창렬(46)씨와 조카 승빈(9)군은 끝내 파도에 휩쓸려갔다.
선착장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고명래(67)씨는 "느닷없이 천둥과 벼락치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며 "급히 나가보니 울부짓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바다에 둥둥 떠 있었다"고 처참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파도에 휩쓸렸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김혜곤(32)씨는 "미처 피할 틈도 없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이었다"며 사고순간을 전했다.
사망자 시신이 안치된 보령 아산병원은 소식을 듣고 온 유족들의 오열이 넘쳐났다. 남편 최성길(65)씨와 동생 이육재(46)씨를 한꺼번에 파도에 잃은 이춘자(58)씨는 "동생은 늦게까지 장가도 가지 않고 집안 일을 도왔다"며 "내일 과수원에 소독을 한다며 소독약까지 다 준비해 뒀는데 올 복숭아 농사는 어떻게 지으라고 이렇게 둘을 다 데려가느냐"고 통곡했다.
신제일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는 생존자 27명 가운데 일부는 생명이 위독해 희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신제일병원 관계자는 "정신을 잃고 바다 속으로 떨어지면서 큰 부상을 당한 생존자가 많다"며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보령=박관규기자 qoo77@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