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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성게알 혀끝서 톡~ 바다내음 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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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성게알 혀끝서 톡~ 바다내음 솨

입력
2008.05.0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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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스에 가보고 싶다. 동해나 남해의 물빛과는 또 다른 지중해 바다를 보면서 우조(그리스 토속주의 일종)를 마시고 싶다. 아, 모처럼 달력에 빨간 날이 줄줄이 달렸는데, 원고나 끄적이며 나는 주말에 또 방에서 콕. 그나마 모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몇 권이 연휴에 놀지 못하는 나의 불만을 다소 씻어주고 있다.

오래 전 읽었던 문고판 <그리스인 조르바> 도 다시 꺼내 들춰보고. 그리스 사람들 먹는 대로 성게알에 레몬즙이랑 식초나 뿌려 먹어볼까 하니, 마침 우리도 성게알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계절에 와 있었다.

■ 성게, 바다의 맛

지금부터 여름까지 맛있는 성게를 먹을 수 있다. 뉴스에 의하면, 최근 동해안에는 성게가 엄청나게 번식을 하여 생태계에 영향을 줄 정도라고. 성게는 겉이 고슴도치 마냥 가시로 덮여있다. 칼로 반을 가르면 야들야들 호들호들한 노란 알이 숨어있다. 껍질에 비해 비교적 적은 양의 알은 그래서 더 귀한 맛이 나는 것도 같다.

성게의 알(어차피 '성게'라 불러도 먹을 부위는 알밖에 없으니 '성게'와 '성게알'을 가려 부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은 단연코 내가 가장 아끼는 식재료다. 바닷가에 가서 만원어치를 주문하면 지금 막 반으로 쪼갠 성게를 큰 접시에 가득 담아 주는데, 나는 그것을 티스푼 하나로 독식하고도 모자라한다.

특유의 바다 냄새를 맡으며 혀 위에 알을 하나 올리면, 혀 - 성게알 - 입천장이 포개지면서 부드럽게 하나가 된다. 치아를 쓰지 않고 그대로 혀에 힘을 주어 성게 알을 으깨 먹는다. 입천장에 붙어 으깨지면서 한번 더 바다 맛을 내고는, 부드러운 소스 정도의 농도가 되어 목구멍으로 홀랑 넘어가 버린다.

그것이 매력이다. 새끼손가락 크기의 작은 알에서 거대한 바다의 향수와 부드러운 촉감을 동시에 느끼며 황홀해할 때쯤이면 벌써 목을 타고 사라져 버리는, 12시 종이 치자 가버린 신데렐라만큼 아득한 맛.

맛 뿐 아니라 그 영양가 또한 대단하다. 무엇보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뛰어나기에 나 같은 애주가는 꼭 먹어주어야 한다. 자양강장의 효과도 있기 때문에 스태미너를 띄우는 역할도 한다. 그밖에 비타민과 미네랄이 담뿍 들어있으니 맛으로, 약으로 먹으면 되겠다.

■ 그리스 식 성게 샐러드

그리스 여행 가이드로 유명한 매트 바렛의 글을 보면, 직접 잡은 성게를 반 갈라 알과 내장을 분리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취한 깨끗한 알에 레몬이나 라임 즙을 뿌리고 식초를 더하여 먹는 것이 그리스 식이라고.

4,000마일에 달하는 해안선을 자랑하는 칠레에서도 성게를 많이 먹는다. 역사적 이유로 인디안, 스페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문화적 영향을 두루 입은 칠레 음식은 많은 유럽 열강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서도 오리지널하다.

연어, 새우, 성게 등을 주로 먹는데, 고수, 파슬리, 매운 고추, 라임 즙, 올리브유, 후추로 버무린 살사를 곁들인다. 싱싱한 성게를 실컷 먹고도 남을 일이 혹여 있다면 칠레식 살사를 곁들여 샐러드로 먹어보자.

■ 이탈리안 성게 파스타

네이플 출신의 이탈리아 셰프인 엔조 페브라로가 제안하는 성게 메뉴는 파스타 한 접시. 워싱턴DC의 백악관 근처, 레스토랑 다쿠아의 셰프이기도 한 그는 일단 팬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달구어 편으로 썬 마늘과 다진 앤초비(이탈리아 잔생선의 일종), 다진 파슬리를 볶으라 한다.

그리고 화이트 와인 두어 술과 싱싱한 성게알을 넉넉히 넣어 약한 불에 졸이고, 삶아둔 면을 더해 볶은 다음 소금과 후추 정도로 간을 마무리하라고 한다.

서울의 몇몇 레스토랑에도 성게를 이탈리안 스타일로 해석한 메뉴들을 먹을 수 있다. 주로 리조토(밥과 죽의 중간 형태로 요리한 이탈리아 메뉴)나 파스타를 양파, 약간의 사프란, 파슬리, 성게알, 크림, 레몬즙으로 만든 소스로 맛을 내는 식이다. 성게알의 부드러운 풍미가 생크림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요리 초보도 간단히 만들어 봄직한 요리다.

■ 성게를 올린 연어 스테이크

소스 팬에 버터, 다진 양파, 다진 버섯을 볶다가 레몬즙과 생크림을 넣고 졸여 만든 소스와 끓는 야채 육수, 혹은 생선 육수에 퐁당 넣어 익혀 낸 연어 한 덩어리를 곁들이는 메뉴는 프랑스식 가정요리 메뉴. 소스를 넉넉히 만들고 연어만 손님 수대로 준비하면 그럴듯한 요리가 차려지기 때문에 손님 초대시 자주 만든다. 여기에 성게가 제철이면 연어 위로 성게알을 몇 점씩 올려 내기도 한다.

레몬 맛이 숨어있는 크림소스에 도톰하고 담백한 연어를 한 조각 적시고, 그 위에 보드라운 성게알을 얹어 입에 넣으면 따끈한 소스, 따끈한 연어, 차가운 성게알이 하나로 뭉쳐지며 입 안을 메운다. 냉장고에 두었던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요하는 순간이다. 와인은 병당 6잔의 와인을 따를 수 있으니, 1만원 내외의 것으로 준비하여 기분을 완성해보자.

■ 제주의 성게 미역국

성게 샐러드, 성게 파스타, 프랑스식 성게 요리는 기분전환용 맛. 정작 나에게 성게 만원어치가 있다면 날로 먹어버리거나 제주도 스타일의 성게 미역국을 끓여 흰 밥이랑 먹을 것이다.

어쨌든 매력 넘치는 식재료는 어느 문화권에서든 환영받는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서 소개해 봤다. 아시아권에서는 성게의 메카로 일본이 꼽히는데, 서양인들에게 성게알 초밥이나 덮밥, 성게알을 얹은 찐밥이나 성게를 이용한 기타 오도시(식전에 입맛을 찾도록 도와주는 한입거리 음식)가 널리 알려진 까닭에서다.

우리 음식, 특히 제주도 메뉴 가운데 성게 미역국이나 성게 칼국수, 해녀 아줌마들이 척척 비벼주는 성게알밥 등도 언젠가 아시아의 대표 건강식으로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 성게 알을 올린 프랑스 풍 연어요리

연어 140g 한 조각, 양파 1/3개, 양송이 2개, 파슬리 약간, 레몬즙 약간, 화이트 와인 2 큰술, 소금, 후추, 버터 25g, 생크림 1/2컵, 야채 육수(대파, 허브, 월계수 잎, 파슬리 줄기, 버섯 약간, 소금 약간)

1. 팬에 버터를 달구고 다진 양파, 다진 양송이를 볶는다.

2. 1에 와인을 붓고 레몬즙, 생크림을 넣어 약한 불에 졸인다.

3. 야채 육수를 팔팔 끓이다가 깨끗이 손질한 연어를 넣어 익힌다.

4. 3의 연어가 익으면 건져 접시에 담고 육수는 2에 1~2 큰술 넣어 농도를 조절한다.

5. 4의 소스를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추고 접시에 담는다.

6. 연어 위에 성게알을 올리고, 레몬으로 장식한다.

* 연어와 궁합이 맞는 허브 '딜(dill)'로 장식한다.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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