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성난 민심의 요구는 별난 게 아니다. “광우병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장담할 게 아니라 광우병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줄 안전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문제는 간단치 않다. 만의 하나 미국발 광우병 위험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우리 정부가 이에 맞서 손쓸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내 한국 수출용 작업장 승인,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거나 심각한 위생조건 위반이 적발됐을 시의 대응이나, 미국내 한국 수출용 육류 작업장 관리 등 검역과 관련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새로운 수입위생조건에서 우리 정부가 강구할 수 있는 모든 대책들이 원천봉쇄됐기 때문에, 미국과의 재협의를 통해 위생조건을 바꾸지 않는 한 검역 주권을 되찾을 길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한결같이 미국과의 재협의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홍하일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위원장은 “광우병 발생국가에서는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개방 폭을 넓힘으로써 이미 광우병에 노출될 확률이 커졌다”며 “미국으로부터 광우병 쇠고기가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미국에서 현재 전체 도축소의 0.5%만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한국에 수출하는 소에 대해서는 전수검사를 실시하도록 요구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일본산 소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도축소에 대해 전수검사를 실시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즉각 수입을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을 감안,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국내 유통단계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격리시키는 것도 현실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정부 예산으로 매입해 처리함으로써 국내 유통을 사전에 차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호경 전국한우협회 회장은 “정부가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리콜 조치를 취하거나 예산을 들여 유통채널에서 격리시킬 경우, 미 축산업계의 반발이 우려될 뿐 아니라 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후속 안전대책을 고심하고 있기는 하지만, ‘수입위생조건’이라는 족쇄 때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고민만 깊어지고 있다. 우 정책실장은 “정부가 수입검역과정에서 현물검사의 표본을 늘리는 등 검역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비경제적 장벽으로 수입장벽의 우려가 크기 때문에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우리 식탁을 보호해줘야 할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이 오히려 우리 국민이 광우병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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