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복 입고 강의하는 나는 영락없이 ‘거지 교수’예요.” 금방 식물을 채취하고 돌아 온 차림으로 시작하는 0교시(오전 8시 시작)의 전공 강의인 ‘야생식물학’ 강좌는 학교의 명물이다. 전공자들은 물론, 법ㆍ철학ㆍ국문 등 문과대생들까지 모여드는 바람에 결국 ‘야생화와 자연 식물’이라는 교양 강좌를 신설해 수요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관찰ㆍ채집한 것들로만 진행하는, 문자 그대로 ‘실시간 강의’다.
이제 일반인들도 고려대 강병화(61ㆍ환경생태공학부) 교수의 <한국생약자원생태도감> 을 통해 그 진경을 맛볼 수 있게 됐다. 각각 1,300여쪽의 하드 커버 3권에 2,037종의 한국 약용 식물이 분류ㆍ정리돼 있고, 니콘과 캐논 카메라로 찍은 사진 1만6,238컷이 현장을 생생히 전한다. 조사에 들인 시간을 환산해 보니 야외 조사 기간이 24년간 3,300여일, 집필 기간이 16년이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7기가 분량의 식물 도감이 그래서 탄생했다. 국내 최대다(지오북). 한국생약자원생태도감>
1986년 <생물생산학> 으로 닻을 올린 강 교수의 저술 활동에서 12호를 기록하는 이 책은 통일 시대를 대비, 한국ㆍ중국ㆍ조선족이 사용하는 천연약물명 1만5,056개를 일일이 비교한다. “남북한의 식물 이름이 같은 것은 3할밖에 안 돼요. 주체 사상으로 웬만한 건 다 바뀌었죠.” 생물생산학>
부창부수인가, 표본 채취하러 갈 때면 시골 출신이라 나물에 밝은 부인 황경순(59)씨가 따라 나선다. “혼자 있다 과부 되면 뭐하느냐는 거예요.” 독충, 낙상 등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길이다. 현장에서 함께 한 시간이 2,500여일. 부인은 그의 조수이기도, 가는귀가 어두운 그의 보청기이기도 하다.
학교 내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seedbank.korea.ac.kr)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강 교수에게는 큰 꿈이 있다. “이제 우리도 정부 지원으로 종자 은행을 세워야 해요. 200~300억 들어요.” 그보다 부인과 강원 횡성에 가서 민들레를 채취할 일이 먼저다. 이 무지막지한 책을 내기 위해, 지난해 야간 대학에서 관련 강좌를 듣는 등 정성을 다한 지오북 대표 황영심 씨에게 감사하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홍인기 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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