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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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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입력
2008.05.0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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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이홍식 엮고 옮김/김영사 발행·331쪽·1만3,000원

“대저 재주가 높고 빼어난 인물이 되는 것, 호걸이 되는 일은 내가 실로 바라는 바가 아니다. 다만 너희가 날마다 삼가고 삼가 ‘삼가는 선비’로 불리며 선조에게 부끄러움을 끼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세종과 세조, 성종 치하에서 높은 벼슬을 한 신숙주는 자식들에게 가훈을 통해 “넘치도록 누릴 생각은 말고 오히려 덜어버릴 것을 생각하라“며 이렇게 훈계했다.

조선시대 명문가의 가훈 21편과 유언 10편을 모은 이 책은 성리학을 숭상했던 조선의 선비들이 자식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잘 보여준다. “세상의 명리는 재앙일 뿐이니 과거시험에 마음을 두지 말라” “술을 멀리하고 독서하는 종자가 끊기지 않게 하라” “백성 부리기를 큰 제사 받들 듯 해야만 한다” “선행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해야 한다” 는 등 교훈적인 말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요즘 자식들처럼 당시에도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자도 있었고 그렇지 않는 자도 있었다. 신숙주의 넷째 아들 신정은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이조참판에 올랐으나 가득 채움을 삼가라는 아버지의 훈계와는 반대로 노비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공문서를 위조하는 과욕을 부리다가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선조 때 이조참판을 한 유희춘은 벼슬을 하지 않는 재야 선비였던 아버지의 가르침 열 가지를 평생 간직하다 자식들에게 가훈으로 남겼다. 그 중 계사회천(械仕誨遷) 즉, 벼슬을 경계하는 대목에서 “벼슬길은 산보다 어렵고 물보다 험하다. 도도한 벼슬바다에서 나아가기만 하고 그칠 줄 모르다가 마침내 풍파를 맞는 것이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라고 훈계하고 있다.

유희춘은 젊은 시절 한때 당쟁에 휘말려 귀양을 살기도 했으나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이조참판을 지내다 스스로 사직하고 전원으로 돌아갔고 자식들에게도 이를 전했다.

윤선도는 당대의 거부였지만 “나는 오십 이후에야 명주옷과 모시옷을 처음 입었다. 네가 명주옷을 입은 것을 보니 마음이 몹시 좋지 않았다”며 아들에게 검소할 것을 당부했다. 실학자 이익은 고을 원이 된 아들에게 “일을 할 때는 마음을 살펴 속내가 없어야 한다. 공문이나 소장을 속이는 자가 있거든 그 이름을 적어두어라”는 등 책상 위에 놓아두고 살펴야 할 글을 지어주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자식들에게 준 가르침들은 격이 매우 높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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