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라인보우ㆍ마커스 레디커 지음, 정남영 옮김/갈무리 발행ㆍ632쪽ㆍ3만원
열 두개의 노역을 동시에 수행했던 헤라클레스는 신화적 영웅이었다. 그의 두 번째 과업 중 하나가 머리가 셋 달린 독이 있는 히드라를 죽이는 일. 자르고 잘라내도 새로 머리가 생겨나는 히드라를 마침내 퇴치한 헤라클레스는 죽은 히드라의 독을 화살에 바른 뒤 가공할 위력으로 나머지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미국의 좌파 역사가인 피터 라인보우와 독일의 노동사학자 마커스 레디커는 헤라클레스를 자본주의 발전의 상징으로, 히드라를 그 체제에 저항한 민중적 동력의 비유로 보고 서양사를 해석한다.
지배계급을 위협했던 이들은 누구인가. 책에 따르면 인클로저운동으로 공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 아메리카 식민농장의 탈주노예들, 미국 독립운동의 주역이지만 역사 이면에 숨겨진 다민족 노동자 집단, 추방된 중범죄자들, 자립적인 여성, 종교적 급진주의자들이 죽어도 죽지 않는 히드라의 목록에 오른다.
그렇다면 이들이 꿈꾸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것은 노동, 사유재산, 법, 중재, 재판관이 없고 국가와 민족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형제애로 연대하는 유토피아적 공동 사회였다. 이들은 끊임없는 반역과 봉기로 맞섰으나 돌아온 것은 체제 수호자들의 무자비한 응징이었다.
가령 16세기 초 미국 이민자중 인디언 공동체 사회의 공동체주의에 투항했던 이들이 영국군에 의해 다시 잡혀왔을 때 일부는 교수형, 일부는 화형, 일부는 바퀴에 깔려죽어야 했고, 1806년 아이티의 토지소유를 확대하기 위한 흑인봉기의 주도자는 사지절단형에 처해졌다. 1647년 매춘부, 직조공, 갤리선 노예를 대표해 프롤레타리아 봉기를 주도했던 이탈리아의 마사니엘로도 몸이 갈기갈기 잘린 채 최후를 맞아야 했다.
시인 김수영 식으로 표현하자면 서양사의 히드라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과 같은 존재다. 책은 주류역사에서 배제됐던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봄으로써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이 이들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음을 각인시키고, 재산이든 권력이든 종교든 그것이 결코 인간의 자유로운 삶보다 더 소중할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원제 ‘The many headed Hydra’.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