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토지> 가 방영되는 날이면, 남녀노소가 없었다. 만사 제쳐두고 TV 앞에 앉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시간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만주로, 일본으로, 서울(경성)로 무대를 넓혀가며 <토지> 가 생생하게 그려낸 굴곡의 현대사에 몸서리를 쳤고, 그 질곡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여주인공 서희를 비롯한 수많은 주변인물과 함께 살았다. 토지> 토지>
구한말에서 광복까지 50여 년 민족수난기를 도도히 흘러가며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와 삶, 한(恨)을 마치 실존처럼 생생하게 그린 <토지> 는 1979년 그렇게 저 시골 할머니의 가슴 속에까지 깊이 자리잡았다. 토지>
역사책이 주목하지 않은 민초들의 역사를 ‘역사보다 더 역사적’으로 기록한 소설 <토지> 를 작가는 1969년 9월부터 1994년 8월15일까지 꼬박 25년간 매달려 썼다. 원고지 4만장 분량이 끝나는 순간, 비로소 작가는 소설 마지막에 일본 패망 소식을 들은 서희가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듯 사반세기 동안 자신을 짓눌러온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토지>
그 <토지> 의 소설가 박경리씨가 어제 타계했다. 한국문단의 큰 별이 졌다. 그는 한국문학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출판인이 뽑은 우리나라 대표소설가, 네티즌이 선정한 20세기를 가장 빛낸 여성인 박경리씨 만큼 국민들로부터 폭 넓은 사랑을 받은 소설가도 없었다. 토지>
그것은 <토지> 뿐 아니라 중편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 미완성으로 끝난 <토지> 이후 세월을 담으려 했던 <나비야 청산 가자> 등 그의 소설이 가진 ‘공감의 힘’ 덕분이었다. 그는 늘 역사 속을 걸으면서도 개인의 존재가치, 특히 특유의 모성적 본능이 스며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은 작가였다. 나비야> 토지> 시장과> 김약국의> 토지>
누구보다 이 땅의 사람과 자연을 사랑했으며, 자신이 사는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지어 문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문단의 ‘어른’ 역할을 해온 박경리씨. 그는 병마 속에서도 지난달 <현대문학> 에 신작시 3편을 발표하는 등 끝까지 작가로서 살다 갔다. 그가 남긴 문학의 정신과 자취를 기리고 발전시키는 일은 이제 후손과 후배들의 몫이다. 삼가 명복을 빈다.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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