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키 지 지음ㆍ한혜정 옮김/창비 발행ㆍ204쪽ㆍ9,000원
그리스의 국민작가 알키 지(81)가 혁명 직전의 팽팽한 긴장이 감돌던 189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소녀가 현실문제에 눈뜨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 싸샤는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나요?’ ‘겨울이 오면 파리들이 다 어디로 가는 거죠?’ 같이 시시콜콜한 일들이 모두 궁금한 호기심 소녀. 의사인 아빠를 둔 덕에 유복하지만, 왜 아빠가 부자들을 치료해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빈자의 무료치료에 관심을 갖는지가 궁금해진다. 궁금증을 해결하는 계기는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싸샤는 단속반원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는 빵장사 할머니, 불결한 지하공간에서 구루병을 앓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집시소녀를 보며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처한 현실을 목격한다. 반대로 끼니마다 산처럼 쌓인 캐비아와 파이, 빵을 차려놓고 과식으로 배앓이를 하면서도 빈자들의 배고픔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이웃집 사람들도 관찰한다.
아빠에게 “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지요?”라고 묻게된 ?X사. 새 가정교사로 온 혁명가 출신의 무네이 무네비치를 만나게 된 소녀는 “크면 선동가가 될거에요”라고 말할 정도로 성장한다.
정치ㆍ역사문제를 어린이문학으로 승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알키 지의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혁명가, 혁명에 대한 심정적 지지자, 반동적인 공장주인, 속물적인 이웃사람들, 미신적 신앙에 사로잡힌 민중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핍진하게 묘사한 작가의 솜씨는 볼만하다. 제목에 등장하는 ‘용’은 주인공 싸샤의 아버지가 싸샤에게 들려주던 러시아 민요에서 따왔다.
진실,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러시아 민중의 기대감을 상징한다고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시대가 변했다. 하지만 모든 싸샤들은 세상의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에서 똑 같은 모습으로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꿈꾼다”고 적었다. 작가 자신이 그리스의 현대사에서 겪었듯 독재와 압제의 역사는 반복되지만, 민중의 각성과 저항 역시 소멸되지 않음을 웅변하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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