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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씨 타계/ 소설 '토지'와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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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씨 타계/ 소설 '토지'와 작품세계

입력
2008.05.0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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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씨의 반세기 문학 인생은 바로 <토지> 로 대표되며, 또 그 이전과 이후로 뚜렷이 나뉜다.

박씨가 1969년부터 25년간 집필, 5부 16권으로 완간된 <토지> 는 ‘소설로 쓴 한국 근대사’다. 경남 하동 평사리와 간도 용정을 무대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에 이르는 동안 최씨 집안의 몰락과 재기를 유장하게 그린 이 작품은 7개 매체 연재, 원고지 4만장 분량, 300여명의 등장인물 등 일단 그 규모부터 기록적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어휘(2,515건), 속담(438건)과 풍속ㆍ제도 등을 따로 정리한 <토지 사전> (1997)이 출간됐을 정도다.

무엇보다 <토지> 는 격변의 근대를 살아갔던 인물의 전형을 제시한 점, 서부경남지역 방언의 핍진한 구사와 정갈한 문체, 심오한 심리 통찰 등 내용 면에서 한국 현대문학사를 통틀어 우뚝한 작품이다. “한국문학이 100년 사이에 이 같은 작품을 가졌다는 것이 자랑스럽다”(평론가 권영민 서울대 교수), “소설이 갖는 총체성의 힘을 깨닫게 하는 작품”(평론가 김치수 전 이화여대 교수), “현대소설사의 거대한 산맥”(평론가 정현기 전 연세대 교수) 등 <토지> 에 쏟아진 찬사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토지> 를 주제로 쓰여진 학위 논문만도 20여편에 이른다.

박씨가 “애초 한 권짜리 장편으로 쓰려 했었다”고 말한 <토지> 는 집필기간 25년 내내 한국인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74년 김지미 주연의 영화로, 79~80, 87~89, 2004~2005년에는 각각 TV 드라마로 제작됐다. 두번째 드라마 제작 때 당시로는 파격적인 원작료 1억원이 박씨에게 주어졌고, 작가가 평사리와 용정을 직접 가본 적 없이 작품을 썼음에도 배경 묘사가 실제 정경과 놀랍도록 흡사했다는 등 작품 외적인 일들도 화제가 됐다.

4부(12권)까지 삼성출판사에서 초판이 출간됐던 <토지> 는 88년 지식산업사에서 다시 나왔고, 5부 완간본(16권)은 93~94년 솔 출판사에서 발간됐다. 2002년부터는 21권으로 나남출판에서 간행되고 있다.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80년대부터 일본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일부가 번역됐거나 번역이 진행 중이다.

<토지> 의 그늘에 가려졌던 박씨의 전반기 소설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박씨는 <토지> 외 다른 소설 창작을 중단한 74년까지 성장기 부모와의 불화, 6ㆍ25의 비극적 체험 등을 바탕으로 낭만적 꿈과 현실에 대한 환멸이 공존하는 작품도 다수 집필했다.

박씨는 4ㆍ19를 기점으로 단편보다 장편 창작에 주력하면서 개인에서 역사ㆍ사회로 문학적 관심을 확장한다. 몰락한 집안의 다섯 딸 이야기 <김약국의 딸들> (1962), 6ㆍ25과 이념의 관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묘파한 <시장과 전장> (1964) 등이 손꼽히는 장편이다. 수다한 인물을 능란하게 다루는 솜씨, 역사와 사회에 대한 남다른 안목 등 60년대 박경리 소설의 특질은 <토지> 의 탄생을 예견케 한 것이었다.

시로 문학을 시작했던 박씨는 <못떠나는 배> (1988), <도시의 고양이들> (1990), <자유> (1994), <우리들의 시간> (2000) 등의 시집도 펴냈다. (1966), <원주통신> (1985)과 <가설을 위한 망상> (2007) 등의 에세이, 92~93년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의 소설창작론 강의 내용을 옮긴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1995)도 박씨의 인생관ㆍ문학관을 살펴볼 수 있는 저서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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