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성직자들도 사람이니까 일반인들과 똑같은 심리적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영혼과 육신, 마음을 함께 전인적으로 치료받을 필요가 있어요.”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주 예레미아(78) 신부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한국에서만 53년을 살았다. 그 중 지난 20년간을 천주교 영성생활상담소에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도자, 성직자들을 상담하는 지도신부로 일하면서 능숙한 한국어로 영성 및 심리치료를 해왔다. 평생을 신에게 바치는 길을 선택한 한국인들을 도와온 주 신부를 27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만났다.
“신부, 수녀님들도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아요. 때때로 우울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미워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미워하는 느낌이 있을 수 있고, 잘못된 점을 고치려고 기도해도 안 되는 일도 있어요. 그럴 때 저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지요.”
주 신부는 한국 수도자, 성직자들에게 많은 심리문제로 특히 열등감, 우울 등을 꼽았다. 주 신부를 찾는 수녀들 가운데 어렸을 때 집에서 오빠나 남동생에 비해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 어른이 된 후에도 열등감이 있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 하느님을 믿는 수도자이면 종교적으로 전문가일 것이라는 일반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감을 갖기 쉽다고 한다.
영성적인 문제 때문에 곤란을 겪는 수도자, 성직자들도 있다. “기도생활에서 하느님께 마음을 온전히 바치려고 하는데 분심이나 욕심 등이 일어날 때 ‘나는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거나 수도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자책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 신부는 오랜 상담을 통해 많은 수도자, 성직자들이 겪는 문제의 90%가 어린 시절에 겪은 내면의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의 일생을 들어보면 이 사람이 어떤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어렸을 때 가족 등으로부터 정신적 상처를 받는데 그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 하느님에게도 문을 닫게 되지요.”
주 신부는 심리상담과 기도, 고백성사 등을 통해 이들을 치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 신부를 찾는 사람들 중 38% 정도는 부부 싸움, 아이 걱정 등으로 괴로움을 겪는 일반 신자들인데 이들에게도 수도자,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치료하고 있다고 했다.
기도 같은 종교적인 방법 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느냐는 물음에 주 신부는 “사람은 영혼, 육신,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느니 만큼 이 셋을 다같이 치료해야 한다. 기도는 주로 영혼에 관계된 것이며, 정신을 치료하는 심리치료도 필요하다. 육신의 문제도 그에 맞게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주 신부가 심리상담을 하게 된 데는 우연치 않은 계기가 있었다. 나주 함평 진도 광주 성당 등을 거쳐 70년대 초 인천교구 소사성당에 있을 때 반정부 데모를 한 사람들을 도운 일이 있는데 75년 아일랜드로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려 하자 한국 정부에서 입국을 불허했다. 이 때 영국으로 파견 나가 수도원 입회자들을 상담하는 일을 했다. 80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수도자들을 위한 심리치료기관의 필요성을 알렸고 선교회의 권유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돌아와 88년 영성생활상담소를 열게 됐다.
54년 사제서품을 받고 그 다음해인 55년 스물다섯 청년으로 한국에 와 지금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주 신부는 “육이오사변 직후에 한국에 와 오십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한국이 고향이고 아일랜드는 제2의 고향이 됐다”면서 “한국에서 아주 만족스럽게 살았고, 죽으면 한국 땅에 뼈를 묻고 싶다”고 했다.
설렁탕과 삼계탕, 순두부를 좋아한다는 주 신부는 “한국이 물질적으로 발달한 것은 기쁘지만 정신적, 도덕적으로는 뒤떨어진 것 같다”면서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어도 사람들이 서로 협조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부자나라가 된 요즘은 자기중심적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남경욱 기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