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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평양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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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평양소주

입력
2008.05.02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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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면서도 중후한 무게감이 느껴진 뒤 입 안에서 살짝 감도는 쓴 맛의 여운.’ 3월 9일 평양 발 로이터 통신은 북한의 대동강 맥주 맛을 이렇게 묘사했다. 맥주 애호가들로부터 한국산 맥주보다 향과 맛 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북한은 2000년 영국의 어셔 양조회사로부터 180년 전통의 양조장을 인수해 그 부품을 들여와 대동강 맥주공장을 차렸다고 한다. 같은 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남측이 북측에 제공한 4억5,000만 달러 중의 일부가 영국 양조공장 인수 자금으로 쓰였다는 탈북자의 증언도 있다.

▦ 경위야 어쨌든 대동강 맥주가 평양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남한과 중국 등지로도 수출되고 있으니 북한의 외화난 해소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일본이 앞장선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 강화로 외화벌이가 여의치 않은 북한으로서는 대동강맥주 뿐만 아니라 들쭉술, 인삼주 등 술 종류가 귀중한 외화벌이 원이다. 미국이 눈에 불을 켜고 견제하는 미사일 등 무기류를 빼면 세계 시장에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품목에 속하기 때문이다.

▦ 29일(현지시간)부터 평양소주가 뉴욕 등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시판되기 시작했다. 평양소주의 미국 진출은 외화벌이 주류 품목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최근 북핵 신고 문제 진전으로 대북 적성국교역법 적용 해제 등 미국의 정치적 보상조치가 임박한 상황에서 북미 교역 본격화의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인 1951년부터 적성국교역법 등을 통한 대북 무역제재로 그 동안 북미 간의 교역은 극히 미미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미 교역이 반짝 증가하기도 했지만 부시 정권 등장 이후 원위치됐다.

▦ 박일우 미주조선평양무역회사 대표가 평양소주 미국 수입을 성사시키기까지는 8년의 세월이 걸렸다. 소주가 적성국교역법 적용대상 품목은 아니지만 적대적인 정치적 환경이 큰 장벽으로 작용한 탓이다. 쌀과 찹쌀, 옥수수를 원료로 하고 170m 지하 암반수를 쓰는 평양소주는 뒷맛이 깔끔하다고 한다.

사실상 북한이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다운 첫 상품인 평양소주가 활발한 교역의 물꼬를 튼다면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에도 큰 도움이 된다. 북한도 더 이상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확산, 마약, 위조지폐, 가짜 담배, 밀수에 매달리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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