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작곡자 안익태(1906~1965) 선생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사명단에 포함되자 우려했던 대로 일부에서 애국가 교체 논란이 일고 있다. 몇 년 전에도 벌어졌던 이 논란을 다루면서 어느 방송의 아나운서는 "그렇다면 축구 한일전 때 부른 애국가는 대체 누구를 위해 부른 것일까요?"라는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멘트까지 곁들이며 '손님'을 끌었다.
다시 논란 빚은 친일인사명단
그가 친일행위자로 분류된 근거는 1938년 <에텐라쿠(etenlakuㆍ강천악)> 라는 천황 찬양음악을 작곡하고 독일에서 일독회(日獨會)라는 친 나치단체에 가입했으며, 1942년 만주국 창설 1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만주환상곡을 작곡해 지휘했다는 것이다. 에텐라쿠(etenlakuㆍ강천악)>
안익태에 관해서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친일행위 여부에 대해 좀더 광범한 자료 발굴과 냉정하고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에텐라쿠> 의 작곡시기와 그 내용에 대해 서는 이견이 있다. 그는 이미 1936년 6월 독일에서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를 만났을 때 그의 첫 작품인 <강천성악> 에 대해 "조선 아악을 주제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에텐라쿠는 강천성악의 일본식 발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강천성악> 에텐라쿠>
만주환상곡과 한국환상곡(1938년 2월 초연)이 유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 곡이 한국환상곡의 5분의 1도 안 되는 6분짜리 소품이며 안익태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치에 의해 연주실황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이라는 반론이 유력하다.
둘째, 종합적으로 행적을 살펴야 한다. 안익태는 10대 시절 평양 숭실학교에 다닐 때 친일교사 추방ㆍ반일운동에 앞장섰다가 무기정학을 당했고(1919년), 이 때문에 도쿄의 중학에 입학할 때 애를 먹었으며, 귀국 후 경찰의 요주의 인물로 분류돼 어려움을 겪었다(1930년).
더욱이 천황을 찬양했다는 시기보다 늦은 1942년 3월 로마에서 이탈리아측으로부터 연주를 취소하고 떠나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한국은 일본에 합병돼 없어졌는데 그에게 한국환상곡 연주를 허가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는 일본측의 항의 때문이었다. 1947년 미국 비자 신청 당시 미 이민국이 조사, 판정한 결과는 "안익태는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이었다. 1935년 11월 작곡된 것이 정설로 보이는 애국가는 1936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악보로 출판되자 일제에 의해 판금 단행본 목록에 분류됐다.
더 많은 사례가 발굴될 수 있을 것이다. 안익태는 해외 각지를 다니며 한국환상곡을 연주할 때 그 곡 속의 애국가 합창부분을 우리 말로 연주하려 애썼다. 그가 불가리아에 갔을 때 그곳 민요를 표절해 애국가를 만들었다는 비난도 전후관계가 잘못 파악된, 근거 없는 주장이다. 불가리아 방문은 1937년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설령 친일혐의가 있다 해도 일방적인 매도는 옳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사 명단 공개가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한 인물을 매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화 작업'이라고 말하지만, 본래 취지와 달리 부작용과 파장은 예상보다 더 크다. 애국가 작곡 하나만으로도 안익태는 역사에 우뚝하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빚을 지고 산다. 그런데 우리는 안익태를 너무도 모른다. 남들은 없는 신화도 만들어 내는데 우리는 있는 신화도 부수고 깎아서 없앤다.
무분별한 왜곡ㆍ매도 중지해야
출국 25년 만인 1955년 귀국한 이후, 그는 고국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국내 음악인들의 질시와, 타협을 모르는 그의 '평안도박치기' 기질 때문이었다. 타계 4개월 전 한국을 떠나면서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을 크게 뜨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 기자 선생들이 조국에 기여하는 길은 저 재잘대는 개구리들을 우물 밖으로 끌어내는 일보다 우물이 대해로 통할 수 있도록 운하를 파는 일입니다."
그가 작곡한 애국가가 정부 수립과 함께 정식 국가로 채택된 지 60년 만에 그는 거꾸로 친일행위자가 되고 말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잘 아는 것이다. 이번의 친일논란이 거꾸로 안익태를 잘 아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임철순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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