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김원 도장에 있을 때. 새 친구가 들어왔다. 멜빵 바지의 귀여운 꼬마였다. 1987년 8월 7일생. 또래보다 키가 작아 더 어려 보였다.
지방에서 ‘한 바둑’했던 성지는 공무원인 어머니를 따라 분당으로 이사와 그 때부터 본격적인 바둑 인생이 시작됐다.
성지랑 나는 집이 같은 방향이라 바둑도장이 끝나는 저녁 9시반이면 부모님들이 교대로 집에 데려다 주셨다. 하지만 방과후 도장에 갈 때는 각자 가야 했는데 어느날 성지가 버스비 500원을 잃어버렸다.
엄마는 직장에 계셨고 당시는 핸드폰도 없던 터라 대책이 없는 상황. 성지가 택한 방법은 우체국에 가서 “버스비 잃어버렸는데요. 500원만 꿔주세요. 내일 갔다 드릴게요”였다. 왜 하필 우체국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어쨌든 무사히 바둑도장에 올 수 있었다고. ㅋㅋ.
그 꼬마가 이젠 다 커서 대학생이 됐다. 작년에 아주대에 입학했다. 가방 메고 학교 간다고 할 땐 영락없는 대학생이다. 게임도 잘 한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수준이 장난 아니다.
얼마 전부터 성지는 운전을 하고 다닌다. 항상 멜빵바지 꼬마로만 기억됐기에 혹시나 운전하다 사고라도 낼까 봐 괜히 내가 떨리지만 순발력이 남다른 홍성지군이기에 괜한 ‘노파심’이다.
좀 된 얘기지만 성지랑 ‘인생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기본급이 전혀 없는 직업이라 경제적으로 불안하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후배들에게 실력으로 밀리기 때문에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걱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장래 인생 설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월 진짜 빠르다.
성지는 요즘 이창호 사범님께 3연승 중이다. 어이없는 역전승이든 내용이 안 좋았든 간에 최강자를 세 번이나 이긴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전부터 재주 있는 바둑이란 말을 들었던 성지. 한 방에 ‘빵’하고 터뜨리기보다 꾸준히 성적을 내 조금씩 랭킹이 올라가는 스타일이다. 각종 기전 본선에서 고루 활약 중이고 기풍 자체도 매우 안정적이다.
지금부터 얼마나 노력하는가가 진짜 승부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그래도 한 분야의 전문가인만큼 인생 설계 잘 짜서 계속 좋은 성적 거두다 서른 다섯 즈음엔 니 희망대로 꼭 사업으로 성공해 있기를. (성공하면 누나 좀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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