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아!”
우종석(26)씨의 외출은 특별하다. 앞 못 보는 선천성 1급 시각장애인인 탓이다. 그런데 우씨는 외출할 때 여느 시각장애인처럼 흰색 지팡이를 찾는 대신 채송이를 부른다.
어디에선가 온 몸이 연한 황토빛 고운 털로 덮인 개 한 마리가 우씨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조르르 달려와 곁에 바짝 붙어 선다. ‘채송’. 두 살 된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다. 우씨가 올해 1월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서 무료 분양 받은 라브라도 리트리버종 암캐다.
채송이는 단순한 개가 아니다. 세상을 보는 우씨의 눈이다. 채송이가 걸으면 우씨도 걷고, 채송이가 멈추면 우씨도 선다. 우씨가 매일 아침 채송이와 함께 향하는 곳은 경기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 이 곳이 그의 직장이다. 분양을 계기로 안내견과 인연을 맺은 그는 이제 일반인들에게 안내견의 중요성을 널리 홍보하는 직장인이 됐다. 안내견 때문에 시작된 외출이 세상을 향한 사회 활동으로 이어진 셈이다.
“세상이 두렵지 않아요”
우씨가 안내견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1학년 때인 2002년 6월. 우연히 안내견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안내견 학교에 직접 분양을 신청했다. 그 결과 안내견 ‘강토’를 처음 분양 받았다. 강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씨의 곁을 지킨 든든한 친구였고, 2005년엔 삼성화재 공익 광고 ‘가장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 출연해 스타가 되기도 했다. 강토는 만 6년 동안 우씨의 손과 발 역할을 하다 나이가 많아 올해 초 은퇴했다.
강토의 은퇴 이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우씨를 달래준 친구가 바로 채송이다. “채송이요? 부드러워요. 매끈하고요.” 태어나서 한 번도 개를 보지 못한 그가 느끼는 채송이다. 부드럽고 매끈한 채송이는 단순한 안내견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돼 준다.
“시각장애인에겐 앞을 못 보는 장애보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문제지요. 태어나서 집 밖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시각장애인이 많아요. 부모들이 보호만 하고 다칠까 봐 집 밖에 잘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경우 세상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낯설 수 밖에 없어요. 특히 자신의 장애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 지를 무척 두려워합니다.”
우씨에게도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안내견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혀갈 수 있었다. “안내견 덕분에 시각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시각장애를 느끼기 전에 개를 먼저 보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대하는 경우가 많죠.” 그만큼 그의 성격도 활발하고 긍정적으로 변했다.
안내견의 도움으로 창원대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6년 3월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 정식 홍보직원으로 채용됐다. 그가 하는 일은 채송이와 함께 전국 곳곳을 다니며 안내견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이다. 전국 사회복지관이나 시각장애단체, 각급 학교 등을 두루 돌아다니는데, 자신이 안내견을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인 만큼 소중한 체험을 설득력 있게 펼쳐놓아 인기가 좋다.
일하면서 안타까운 점은 안내견에 대한 어른들의 잘못된 시각이다. “아이들이 개에게 다가가면 물린다고 못 가게 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안내견이 자신을 물 수 있다고 오해합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들이 결국 안내견의 활동을 제약합니다.”
그래서 그는 안내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청소년 대상 교육에 더욱 열심이다. 최근에는 서울 덕성여고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안내견 체험을 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모든 것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순수함이 있어서 학창시절 안내견 체험을 하면 사회에 진출해서도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게 됩니다.”
“어떻게 개 편을 듭니까.”
채송이와 함께 하는 외출은 자신에게도 즐거움이지만,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보람이 있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안내견을 반기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식당에 들어가면 업주들이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손님들이 오히려 나서서 안내견은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버스나 지하철 탑승은 예전보다 편해졌다. 이제는 국내선 비행기 객실에도 안내견이 동승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 안내견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다. 특히 솔선수범 해야 할 공무원들의 인식 부족은 심각하다. 점포 등에서 안내견 출입을 거부하면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제출하는데, 공무원들이 관련 지식 부족으로 중재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씨는 “민원을 제출하면 ‘어떻게 개 편을 들 수 있겠느냐’며 객관적이지 못한 입장을 보이는 공무원들이 많다”며 훅릴楮置杉?
우씨는 대중교통 수단에 안내견 스티커를 부착하는 방법을 건의했다. “안내견을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버스, 지하철 등에 안내견 홍보 스티커를 붙였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그는 요식 및 운수업체 모임을 찾아다니며 안내견 홍보활동을 할 생각이다.
우씨의 꿈은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사회에 나오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직업이 안마사에 국한되는 등 다양하지 못한데, 찾아보면 시각장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의외로 많아요.” 그래서 갈수록 자신의 역할이 더욱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저는 국내 유일의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사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시각장애인들이 스스럼없이 사회와 하나돼 어울릴 수 있도록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생각입니다. 채송이가 제게 세상의 빛으로 다가온 것처럼, 저 역시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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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마리 '인생파트너' 시각장애인에 '빛'
삼성화재가 운영하는 경기 용인의 안내견 학교는 정부의 인증을 받은 국내 유일의 안내견 양성기관으로, 국제안내견협회(IGDF) 정회원이다. 1994년 첫 안내견을 배출한 이래 지난해까지 총 113마리를 안내견으로 양성, 시각장애인들에게 무상 분양했다. 국내에는 현재 55마리의 안내견이 활동 중이다.
안내견 양성 과정은 기나긴 기다림의 연속이다. 골든 리트리버나 라브라도 리트리버 견종 가운데 성품과 건강상태가 좋은 종견과 모견을 뽑아서 매년 번식을 시킨다. 강아지가 태어나면 생후 7주때부터 일반 가정에 위탁해 1년 동안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즉, 사람과 친해지는 작업을 하는 셈이다.
이후 안내견 적합성 종합평가에 합격한 개들을 대상으로 6~8개월의 집중 훈련을 실시한다. 훈련을 받은 개들은 최종 시험을 치르는데, 합격률은 40~50%선. 안내견 학교의 장재원 차장은 “시각장애인의 안전과 직결되므로 시험 과정이 까다로운 편”이라며 “40~50% 합격률은 전 세계 안내견 학교 중 상위에 드는 성적”이라고 소개했다.
합격한 안내견들은 시각장애인과 함께 4주간의 적응기간을 갖는다. 주인과 안내견이 무난히 어울리면 정식 분양이 이뤄지며 은퇴할 때까지 활동한다. 두 살 때 분양되는 안내견들은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활동기간이 고작 5~11년 정도다. 은퇴하면 자원봉사자 가정에 분양돼 2~3년의 여생을 보낸다. 안내견 학교는 은퇴견이 사망하면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화장한 뒤 추모패도 만들어 준다.
우리나라는 양성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내견이 분양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외의 경우 영국, 미국, 뉴질랜드 등 27개국 70여개 안내견 양성기관이 그 동안 2만5,000여 마리의 안내견을 양성했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안내견의 절반 가량은 미국에 있다. 일본도 9개 안내견 학교에서 1,000여 마리를 분양했다.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는 안내견 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경북 대경대에도 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달부터 2명의 대경대 소속 훈련사가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서 연수를 받은 뒤 내년 9월 설립되는 대경대 안내견 학교 훈련사로 활동한다.
안내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매월 2, 4주 토요일에 열리는 ‘투어데이’를 통해 안내견의 훈련과정 등을 1시간 동안 살펴볼 수 있다. 견학을 원하면 매주 금요일 오전까지 안내견 학교(mydog.samsung.com)로 신청하면 된다. 일반인의 견학은 지금 학교 사정으로 잠시 중단됐으나 곧 재개된다.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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