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인적 물갈이 작업이 관련 법과 상식을 무시한 채 ‘코드검증’과 ‘이념검열’ 수준으로 치달아 물의를 빚고 있다.
주택공사 토지공사 한국전력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주요 사업ㆍ금융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 경영진의 사표를 종용하더니, 급기야 총리실이 관할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경제인문사회 분야 국책 연구기관장에게서도 일괄사표를 받았다. “국책 연구기관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연구ㆍ전파하는 곳이어서 철학이 다르면 같이 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일반 공공기관장의 재신임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사표를 요구했을 때도 문제가 적지 않았다. 불과 1년 여 전에 여야 합의로 만든, ‘법령이나 정관을 위배하지 않는 한 임기 중 기관장을 해임할 수 없다’는 공공기관 운영법 상의 임기조항을 입맛대로 뒤엎은 까닭이다. 그럼에도 이 조치에 수긍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 관행과 방만한 경영이 도를 넘어, 뭔가 충격적 요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서다.
하지만 정부출연기관 운영ㆍ육성법에 의해 임기와 독립적 경영이 보장된 국책 연구기관장까지 무차별로 사표를 내게 하는 것을 보면 정권의 숨은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책 연구기관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연구ㆍ전파하는 곳’이라고 강변하는 인식부터 조잡하고 터무니없다. 정부가 돈은 대지만, 이들 기관은 국가의 중ㆍ장기 과제를 연구하고 조언하는 곳이다.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고 홍보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청와대는 “정권의 정책목표와 방향이 많이 바뀌었으니 싱크 탱크 기관장들의 재신임을 묻는 것은 법적 논란 이전의 정치적 금도와 상식”의 문제라고 말했다. ‘원칙’이라는 용어는 쏙 뺀,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그토록 금도와 상식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지금 재산문제로 온갖 물의를 빚고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는 뭔가. 처신과 행태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 교체해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옥석을 가리지 않고 지식사회에 모욕을 주면 ‘지식 장사꾼’만 양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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