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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우시장, 사료값은 치솟는데 소값은 뚝, 거래도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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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우시장, 사료값은 치솟는데 소값은 뚝, 거래도 뚝

입력
2008.05.02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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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돈 100원이 걸린 실랑이는 하염없다. “7,900원이면 됐지.” “8,000원은 받아야지.” 29일 새벽 5시 충남 홍성군의 광천우시장(5일장), 해는 밝아오는데 소를 사고 파는 낯빛이 모두 어둡다. 흥정은 거래의 기본이라지만 마음 같아선 100원을 꺼내 건네주고 싶다.

그러나 100원은 ㎏당 기준, 소 한 두(보통 500㎏)로 따지면 무시 못할 액수(5만원)다. 축산농민 오홍영(53)씨는 “발표(18일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전에 ㎏당 8,500원 하던걸 오늘 7,000원에 팔았다”고 한탄했다. 보름새 75만원 정도가 증발한 셈이다. 이날 수소 3마리를 처분한 김능환(50)씨는 “최소 ㎏당 7,500원은 받아야 하는데 생산비도 못 건졌다”고 하소연이다.

#2 트럭운전사 허근범(44ㆍ경기 포천)씨는 농장을 하는 친구 부탁을 받고 서울축산물공판장을 찾았다. 소들과 함께 트럭에서 밤을 샜다. 기름값, 식비, 인건비 등을 빼고도 우시장보단 더 쳐주리란 기대 때문이다. 그는 “공판장엔 190마리밖에 둘 수 없는데 시골에서 직접 소를 팔러 오는 농민이 늘면서 밖에서 며칠 대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고 했다. “명절대목에나 잠깐 벌어지던 일”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우(牛)시장이 우울하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과 사료가격 급등의 이중고를 견디지 못해 생떼 같은 소들을 줄줄이 시장으로 끌고 오지만 제값을 받기는커녕 거래마저 실종 조짐을 보이고 있다.

광천우시장을 찾은 29일 9917.4㎡(3,000평) 규모의 시장은 소 290두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이날 팔린 소는 256두. 그나마 징검다리 연휴(5월 1일, 3~5일) 덕분에 매매가 활발했다. 하지만 헐값이다. 쇠고기협상전인 한 달전과 비교해보면 암소 수소 송아지 모두 ㎏당 평균 1,000~1,5000원이나 빠졌다. 마리당 50만~75만원 꼴이다.

전국 62곳의 우시장 한우 매매가도 연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송아지는 가격폭락의 폭이 더 큰데다 사려는 사람도 없다. 강원 횡성우시장에선 400만~500만원 하던 암송아지가 150만원까지 내려갔다. 홍성에선 거래가 아예 없는 날도 있다.

가격하락, 거래실종보다 무서운 건 ‘가격이 더 내릴 것’이란 기대심리다. 충남 서산에서 광천우시장을 찾은 유성호(59ㆍ목장주)씨는 “암소 3마리를 사려다가 더 떨어질 것 같아 빈손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소를 보유한 축산농민만 죽을 맛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료가격까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 포대(25㎏ㆍ12개월짜리 암소가 5일 먹는 양)에 5,600원 정도 하던 사료는 현재 9,000원, 다음달엔 1만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사료의 대체제인 볏짚도 한단에 3,500원까지 올랐다. 직접 소 먹일 작물을 재배하겠다는 푸념도 들린다. 한 농민은 “인건비 씨앗비 비료비 등 평당 2,000원만 들이면 사료 한 포대 역할을 한다”고 헤아렸다.

정부는 “경쟁력을 높여 수입개방에 대응하자”고 외치지만, 농가들은 경쟁력을 키우기 전에 먼저 고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허근범씨는 “사료 외엔 대안이 없는 돼지 농장의 경우 사료 값을 감당 못해 최근 야반도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며 “애국심으로 버텨온 한우 살리기도 한계에 봉착해 조만간 가산 탕진하고 달아나거나 자살하는 농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새끼를 밴 암소까지 내다팔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에 대한 서운함은 차츰 불신과 분노로 바뀌고 있다. 한우 80마리를 키우는 홍성의 심진일(53)씨는 “정부의 사료가격 연 3% 대출, 도축세 폐지, 송아지 안정제 등은 모두 효과 없는 생색내기 정책”이라고 성토했다. 횡성의 농장주 이병국(51)씨는 “사료가격은 올릴 대로 올리고 뼈다귀까지 수입하다니… 어린애가 살림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우시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한결같이 정부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홍성=홍기헌(광운대 행정학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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