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40년전 5월 파리를 휩쓸었던 바리케이드 대열은 해방의 물결이었던가, 무질서의 재앙이었던가.
서구를 뒤흔들었던 프랑스의 ‘68년 5월’(May ’68)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으면서 그 평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사태’(event)냐 ‘운동(movement)’이냐는 명칭 논란에서부터 “해방의 성스러운 분수령”이란 찬사와 “도덕과 사회질서의 재앙”이란 악평까지 쏟아지며 프랑스가 양분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프랑스에서는 68년 5월 40주년을 기념해 최근 100여권의 책이 쏟아져 나왔고 당시를 회고하는 TV 프로그램, 기념 학술대회 및 문화제가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 식품업체 포숑은 이 분위기를 타고 ‘혁명의 향기’라는 브랜드의 차 상품도 내 놓았다.
‘68년 5월’은 프랑스 낭테르 대학에서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 규제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시위가 5월 한달간 프랑스 전역의 대학생 시위와 1,000만 노동자의 파업으로 확산된 전례없던 반체제, 반문화 운동이었다. 파리의 시위는 냉전과 베트남전 등의 시대적 문제와 결부되면서 그 해 미국 독일 체코 스페인 일본 등 세계의 젊은이들을 저항과 해방의 열망으로 들끓게 했다.
‘금지만이 금지된다’ ‘구속 없는 삶을 즐겨라’ ‘혁명을 생각할 때 섹스가 떠오른다’ 등 당시 슬로건에서 보이듯 기존 정치체제와 도덕 관습에 대한 전면적인 반란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입장에 따라 열광과 혐오라는 극단적인 반응을 낳고 있는 것이다.
보수파에게 ‘68년 5월’은 바로 ‘무질서와 파괴’의 끔찍한 악몽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68년 5월을 도덕과 권위, 국가 정체성 위기의 근원으로서 청산돼야 할 유산으로 지목, 이 같은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영국 철학자 로저 스쿠루턴도 최근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 차를 불태우던 젊은이들은 책임감이 없었다”며 “도덕과 정신의 재앙이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진보적 입장에서 68년 5월은 정치혁명이라기보다 억압적이고 고루한 사회 관습을 뒤바꾼 문화혁명의 분수령으로 기억된다.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티에르는 호주의 일간 ‘에이지(The Age)’에서 “변화가 하루 밤새 일어나지 않았지만, 학교와 가정 직장 등에 걸쳐 프랑스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나의 68혁명’을 펴낸 가이스마르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혼 경력 등의 화려한 사생활에다 유대계 뿌리가 있는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68혁명이 만들어 놓은 문화적 변화 덕분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68년 5월이 진보진영에서 무턱대고 환영 받는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를 부추겨 80년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지적과 함께 히피와 마약 문화만을 남겼다는 냉소도 없지 않다. 실업과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스의 현 젊은이들에게 68세대가 보보스(BOBOSㆍ부르주아 보헤미안)라는 허울뿐인 자유주의자로 비쳐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68정신의 계승자들은 68년 5월의 진정한 의미가 당대 문제에 대한 치열한 도전이라고 강조한다. 당시 시위 주도자였던 독일 녹색당 콘 벤디트 유럽의회 의원은 최근 ‘68년을 잊어라’는 책을 내고서 “40년 전 우리는 실업률이나 에이즈, 지구온난화, 세계화 같은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며 “68년을 계속 얘기하는 것은 오늘날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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