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천기술 뒷전… 무늬만 '메이드 인 코리아' 헛장사
4월 초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올해 1분기 사상 최대 영업 흑자를 기록한 LG디스플레이의 기업설명회가 열렸다. 1분기 환율 급등으로 상당한 환 차익을 보았을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에 대해 정호영 부사장(CFO)은 이렇게 말했다. “1분기에 달러 환율이 4% 정도 올랐지만 재료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엔 환율은 12% 정도 내려가 환율 효과는 거의 없었다.”
한국의 LCD 패널은 세계가 알아주지만, 패널 원가의 70%를 차지하는 부품과 소재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해외 업체가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LCD 패널업체에 납품하는 1차 부품의 국산화율은 2005년 65%로 증가했지만, 1차 부품업체에 첨단 소재를 공급하는 2차 부품업체의 국산화율은 아직도 20%에 머무르고 있다.
백라이트 유닛을 만드는 데 필요한 프리즘 시트와 휘도향상 필름은 3M이 특허와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고, 편광판 소재로 쓰이는 필름도 후지필름, 코니카미놀타, 쿠라레이, 일본합성화학공업 등 일본 부품업체들이 거의 독점 공급한다. 제품은 있어도, 지식은 없는 셈이다.
■ 원천기술이 없다
사실상 한국 LCD 패널 업계는 부품과 소재를 해외에서 사다가 역시 외국회사로부터 들여 온 장비를 가지고 정교하게 조립, 대량 생산해 되파는 구조다. 이것은 LCD 패널뿐 아니라 휴대폰이나 반도체 등 IT업계의 전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굴뚝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 1위 조선업도 LNG선의 핵심 부문인 화물창과 엔진을 만들면서, 모두 원천기술을 가진 유럽 업체들에게 거액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
선박에 칠하는 페인트 등 각종 특수재료도 수입한다. 그나마 자동차 분야는 부품 국산화율이 높은 편이지만 정밀 소재인 산소센서(64%) 와이어하네스(50%) 촉매담채(45%) 스파크 플러그(36%) 등은 일본 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갖고 있다.
올해 초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5대 수출제품(반도체, 승용차, 선박, 무선전화기, 디스플레이) 제조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핵심 부품소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이 전체의 45.6%에 달했다. 상의는 “그동안 부품소재의 국산화가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 부품소재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조립·가공분야 범용부품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기업들은 부품소재 분야의 국산화 수준이 낮은 이유로 ‘원천기술 개발능력 부족’(39.1%), ‘개발보다 수입하는 것이 경제적’(30.3%), ‘해외에서 원천기술 지재권을 선점’(21.2%) 등을 꼽았다. 기술력, 경제성, 지재권 모든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부품소재와 생산기술의 수입비중이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이다’(37.6%)란 응답이 ‘줄어들 것이다’(35.6%)보다 더 많고 ‘변함없다’라고 대답한 곳도 26.8%여서 앞으로도 개선될 것이라고 보는 비율이 적었다.
‘중국 위협론’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국가적으로 연구개발(R&D)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고 기술이 앞선 외국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심지어 다른 나라의 기술을 훔치는 일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기술확보에 열심인 중국이 가장 먼저 따라잡을 분야는, 일본이나 서방 국가가 갖고 있는 원천기술보다 우리나라의 최종 조립단계 실용화 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다.
■ 근시안적 투자문화
우리나라의 R&D 투자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결코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왜 원천기술 경쟁력은 미약한 것일까. 결국 투자효율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2004년 우리나라의 해외 논문 발표 수는 1만9,279건으로 세계 14위에 이르지만 논문 1편당 피인용 회수는 2.80회로 29위에 머무른다. 미국 특허등록 건수 순위도 세계 5위에 이르지만 점유율은 2.70%에 불과하며 특히 이들 특허 중 실제로 업계에서 ‘크로스 라이센싱’ 등을 통해 거래될 수 있는 가치 있는 특허는 드물다.
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특허들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일본 소재산업 경쟁력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 원천은 100년 넘게 업력을 유지하면서 단 하나의 신소재 개발에 10년 이상을 투자하는 등 장기적 관점에서 장인정신으로 연구개발에 몰두한 업체들에서 나온다.
한국 업체들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빨리 빨리’ 개발할 수 있는 실용화 기술과 양산 기술에만 집중 투자해 완제품 생산 면에서는 일본을 따라잡고 일부 분야에서는 제치기까지 했으나, 이렇게 개발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원천기술을 개발하지는 못했다. 인내력 부족한 단기성과주의가 결국 원천기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브라운호퍼 П맑年?정부로부터 받은 기본예산은 대부분 민간에서 쉽게 투자하기 어려운 중장기 미래ㆍ원천기술 연구에 투입하고, 나머지 재원은 단기 성과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계와의 계약연구를 통해 충당한다. 양자를 적절히 조화함으로써 독일은 민간 연구소 이상의 연구 성과를 내며 산업계를 이끌 수 있었다.
산업연구원 남장근 연구위원은 “부품소재 기업이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인데 자금이나 기술력이 부족하다”면서 “최고의 기술력과 인재를 요하는 첨단 분야는 장기간 인내심을 갖고 투자할 수 있는 대기업이 뛰어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또 “언론에서 전자업체들의 화려한 수출 성과를 띄워주지만 말고, 그 제품들을 뜯어 보면 사실상 일본제품 투성이라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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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콘텐츠 이끌 아이디어가 없다
‘창조산업’이라 불리는 문화 콘텐츠 산업의 전망은 ‘장밋빛’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문화산업의 세계시장 규모는 2004년에서 2009년까지 연평균 7.3%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규모도 2005년 기준 전년 대비 7.8%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신성장 동력 중 하나로 육성하기 위해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CJ, 오리온 등 기존의 콘텐츠 분야 대기업뿐 아니라 KT, SK텔레콤 등 통신회사들도 통신ㆍ방송 융합 시대에 가장 필요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중소 콘텐츠 업체에 투자하거나 아예 인수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영화나 게임, 드라마 한편을 만드는 데 수십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추세다. 그러나 2004년 문화관광부가 산출한 한국의 문화산업 경쟁력 지수는 12.44(40점 만점)로 미국(31.41) 영국(20.48) 일본(18.71) 프랑스(16.65) 등에 한참 못 미친다.
또 같은 해 미국의 문화산업 경쟁력을 100으로 놓고 한국의 분야별 경쟁력을 산출한 결과, 자원 공급(57.9) 유통구조(38.9)에 비해 창작 기반(25.2)이 현저히 떨어졌다.
문제의 근원이 ‘창조력의 빈곤’에 있다는 뜻이다. 아시아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류’ 드라마의 인기가 식어가는 이유도 식상한 이야기구조 등 창의성의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내 놓은 ‘문화 콘텐츠 산업의 2020 비전과 전략’ 보고서는 국내 문화 콘텐츠 산업의 약점으로 핵심장비 및 원천기술 대외의존(컴퓨터 그래픽 등), 핵심분야 전문인력 부족 등과 함께 ‘세계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창의력 부족’을 지적했다.
창의성은 문화 콘텐츠 산업뿐 아니라 일반 제조업에도 결정적인 부가가치를 추가할 수 있는 요소다. 품질만 좋다고 세계1등 제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콘텐츠와 독창적 디자인 같은 ‘지식’이 수반되어야만 최고부가가치의 상품을 만들 수 있는데, 그 원천은 바로 창의성이다..
애플은 MP3플레이어를 가장 먼저 내놓은 회사가 아니다. 하지만 혁신적이고 편리하며 아름다운 디자인, 디지털 음원을 유료로 판매하는 새로운 사업모델, 편리한 음악 소프트웨어 등 독창적 요소를 더한 ‘아이팟’을 내 놓으면서 세계 시장을 사실상 점령했다.
애플의 아이폰 역시 휴대폰에 ‘터치 스크린’을 적용한 최초의 제품이 아니지만 과거 누구도 본 적 없는 혁신적인 사용자 편리성과 단순면서도 미려한 디자인, 다양한 프로그램을 사용자가 직접 만들어 넣을 수 있는 개방성 등으로 ‘혁신적 기기’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나라 미래 산업을 이끌 ‘창조적 인재’가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은 창의력을 말살하는 교육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그러나 교육 시스템이 당장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 연구원은 “기업들이 창조적 인재를 임원으로 영입해 적극적으로 우대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 기회를 주며, 문화산업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해외의 창조적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내에 자극을 주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실제로 애플, 나이키, P&G 및 BMW 등은 디자인 최고 책임자(CDO)를 부사장급으로 임명하고 디자인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보장한다. 일본 닛산자동차는 2006년 4월 그룹 내에 ‘최고 창의성 책임자(Chief Creativity Officer)’라는 직책까지 만들어 조직 내 창의성, 디자인, 브랜드 등 창조력과 관련된 무형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최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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