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 책세상
“참 싱싱해 뵈죠?” 다방 안으로 들어와 앉는 등산복 차림의 여자들을 보면서 형수는 말했다. 밖에는 문득 새 옷을 갈아입고 싶게 만드는 사월의 오후가 화사하게 가로수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작가 한수산(62)의 단편소설 ‘사월의 끝’의 첫 부분이다. 달력이 사월의 마지막 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문득 그의 이 작품이 떠올랐다.
‘사월의 끝’은 한수산의 1972년 신춘문예 등단작이다. 이듬해 한국일보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해빙기의 아침> 이 입선하고, 1977년에는 사라져가던 곡마단의 이야기를 쓴 장편 <부초> 로 제1회 오늘의작가상을 받으면서 그는 1970년대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가 됐다. 단편소설집 <사월의 끝> 이 나온 것은 1978년, 꼭 30년 전이다. 이 책이 지난해 다시 출간된 것도 이번에 알았다. 작가는 새로 쓴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다들 참 젊었었다.” 사월의> 부초> 해빙기의>
그의 소설 참 많이들 읽었었다. 한수산의 매혹적인 서정적 문체, 섬세한 감수성은 작품 속의 허무와 죽음마저도 아름답게 만든다. 다시 읽어보니 ‘사월의 끝’에도 짧은 이야기 속에 누나, 할아버지, 연인의 죽음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는 형수까지, 4명의 죽음들이 있다. 전에 읽을 때는 그것을 알고나 읽었던가? 하지만 그 당시 한국사회의 분위기, 출구 없던 시대의 젊음에, 사월의 오후처럼 따스한 빛을 비춰주는 듯한 한수산의 문장은 또렷하게 기억이 되살아난다.
작가는 그 세월 사이 1981년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겨운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자신에게 주었던 ‘한수산 필화사건’을 겪고, 한동안 글 한 줄 쓰지 못한 채, 자신을 고문했던 보안사의 사령관이 대통령이 돼 있는 동안에는 한국에 있고 싶지 않다며 1988년부터 4년 넘게 이 땅을 떠나 있기도 했다. 그 가늠하기 힘든 고통을 이겨낸 그는 여전한 현역의 작가다.
‘사월의 끝’의 마지막 장면에 그가 쓴 것처럼, “사월 마지막 날의 바람이 우리를 감싸고 새로 피어난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가고 있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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