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29일 국회 통외통위에서 "과거 남북은 7ㆍ4 성명, 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ㆍ15 선언, 10ㆍ4 선언 등 많은 합의를 했는데 이행하지 못한 것도 많다"며 "정부는 앞으로 현실을 바탕으로 상호존중의 정신 하에서 남북 협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서울-평양 상주 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안한 데 이은 남북간 대화재개 메시지로 해석돼 주목된다. 특히 김 장관은 이날 통외통위 질의응답에서 통합민주당 의원들이 "남북간 기존 합의에 대한 입장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똑같은 문구의 답변을 세 차례 읽어 준비된 대북 메시지임을 시사했다.
북한은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제안을 거부하면서 26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6ㆍ15, 10ㆍ4 선언에 대한 입장부터 바로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김 장관의 언급은 북측이 '기존 합의에 대한 남측의 입장을 밝히라'며 넘긴 공을 '일단 남북대화를 시작해 합의서 이행 방안도 논의해보자'며 받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가장 중요한 남북간 정신은 19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라는 이 대통령 발언을 바탕으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6ㆍ15, 10ㆍ4 선언을 사실상 부정해왔다.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 경제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미 핵 협상이 진전되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대화 의지를 확인한 뒤 정부는 남북대화 재개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실제로 정부는 이 대통령 방미 후속조치 보고서에서 '남북대화 재개 제의 검토'라고 명시한 바 있다. 김 장관도 이날 "북핵이 폐기되고 나서 (남북 경협을) 하는 게 아니라 (비핵화) 진전에 따라 단계적으로 할 것"이라며 달라진 입장을 보였다.
북한이 김 장관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면 새 정부 출범 후 막혔던 남북대화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의문을 품고 있어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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