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사태와 성화 봉송 시위로 전세계가 시끄럽던 24일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개막 열흘을 앞두고 터진 '10ㆍ2 대학살'을 보도했다. 일당독재와 부정부패, 인권유린에 항의해 일어난 멕시코 대학생들의 시위는 군경의 무차별적인 발포로 수백명이 희생되는 대참사로 막을 내렸다.
당시 중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린 올림픽에 대한 구스타보 오르다스 독재정권의 자부심과 체제결속에 대한 의지는 대단했다. '1968 멕시코의 망령'이라는 이코노미스트의 이 기사는 꼭 40년 간격을 두고 벌어진 티베트 사태와 10ㆍ2 대학살을 통해 올림픽이 정치에 얼마나 오염될 수 있는가를 진단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베이징(北京) 올림픽이 멕시코 올림픽과 비슷한 점은 무엇보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야만 한다는 '정치적 절박함'이다. 여기에는 55개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이라는 틀로 녹여 체제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중국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30일로 개막을 100일 앞둔 베이징 올림픽을 서방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올림픽과 정치가 빚어낸 과거의 불미스러운 기억 때문이다.
올해는 중국에 매우 의미있는 해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ㆍ개방'30주년인 올해를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 부흥의 해'로 정하고 갖가지 굵직한 국제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달 초 하이난(海南)섬에서 '제2의 다보스 포럼'을 꿈꾸는 보아오(博鰲) 포럼이 각국 정상급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8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 10월 말에는 아시아ㆍ유럽정상회의(ASEM)가 개막된다. 일련의 국제적 이벤트를 통해 국제사회의 중심축으로 발돋움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생각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포럼 개막식에서 올림픽을 이용한 분열책동과 폭력선동에 단호할 것을 천명하면서 "세계의 다극화 추세는 움직일 수 없는 대세"임을 분명히 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티베트 사태 등을 계기로 덩샤오핑이 100년간 고수해야 할 원칙으로 제시했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ㆍ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전략이 퇴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방의 인권과 민주주의 요구를 중국식 체제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보고 불매운동 등 실력행사를 불사하는 중국식 반응에 대한 해석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를 올림픽 개막식 참석 조건으로 내건 것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올림픽이 인권과 폭압의 허울을 덮는 면죄부가 되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의지인 동시에 중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대국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수적이고 피해망상적 민족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바람이다. 한편으로는 불매운동 등 중국인들의 실력행사를 통해 확인된 힘의 남용이 제어되지 않을 경우 국제질서에 미칠 해악을 두려워한 것일 수 있다.
'올림픽과 정치는 별개'라고 하지만 정치와 결부되지 않은 올림픽은 거의 없었다. 중국 민주화의 가늠자라는 시각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보는 국제사회의 눈은 갈수록 예리해질 듯 하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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