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식하기 때문에 더 (답)하지 않겠습니다. 질문을 들어보니까 당신은 중국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중국(에 관한) 번역 책 좀더 많이 보고…”
서울대 사회대 국제문제연구소 주최로 23일 열린 외교포럼에 초청돼 ‘중국 대외정책의 기조’를 주제로 강연한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는 질의답변 과정에서 한 참석자가 티베트 사태와 베이징올림픽에 관해 질문하자,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했고 평양 중국대사관에서도 근무했던 한반도 통이니 그는 한국어도 유창한 모양이다.
그 소식을 듣고는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걱정이 들었다. 더구나 그는 외교관이다. “당신은 무식하다”는 말로 한 질문자를 모욕할 수는 있어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안을 뭉개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의 말 한마디는 곧 중국 정부의 입장이 된다.
그런데 걱정이 현실이 됐다.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이 있었던 27일 서울 도심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의 폭력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돌멩이와 금속절단기가 날아다니고 각목이 난무했다. 최루탄만 없었지, 마치 20여년 전 한국의 시위현장 한복판에 있는 듯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날 사태를 ‘4ㆍ27 무장폭동’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닝푸쿠이 대사는 한국 외교부에 경찰과 기자들이 다친 데 대해 유감과 위로의 뜻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는 23일 강연에서는 “폭력적 시위는 어느 정부도 용인할 수 없다. 우리는 법대로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중국 정부의 티베트 사태 진압을 정당화했다. 그렇다면 27일 서울에서의 중국인의 폭력적 시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성홍기가 서울의 성화봉송로 주변을 뒤덮은 듯 휘날리는 것에 섬뜩함을 느꼈다는 이들도 많지만, 이날 사태의 핵심은 폭력이다. 폭력은 오만하다. 나와 생각이 다른 남을,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리력으로 누르겠다는 의사 표시다. 외교포럼에서 당신은 무식하니 책이나 더 읽고 오라고 한 닝푸쿠이 대사의 말이 왜 걱정스러웠는지 이날의 폭력이 보여준 셈이다.
이번 사태로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땅에서 태어난 미국 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했다. 그에 의하면 “동일한 정치적 운명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공동체”인 민족은 “끊임없이 ‘타자’를 상상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강조해, 그것을 배제하면서, ‘우리’라는 일체감을 굳혀간다.” 한국에서는 앤더슨의 논리를 끌어대 탈민족주의를 외치는 이들도 있지만, 민족이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그의 개념으로 본다면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으로 민족의 ‘구성’을 완성하고 세계에서 당당히 인정받으려는 욕심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타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폭력시위를 벌이는 오만에 기반한, 배제의 민족주의여서는 안된다.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 정신으로 상징되는, 인류 역사의 가장 큰 발걸음이 결국 자유라는 가치를 향한 것이었다면 비폭력은 그 자유의 가장 본질적인 내용이다.
티베트 문제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서구의 가장 효과적인 이슈가 되고, 달라이 라마가 서구인들에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어쨌든 그의 비폭력 노선 때문 아닌가. 붉게 휘날리는 오성홍기가 아니라 “당신은 무식하다”고 타자를 일거에 내치는 중국의 오만이 더 섬뜩한 것이다.
하종오 문화부 부장대우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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