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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자율화 따라 '투명성 지침'도 사라지고…학운위가 견제 구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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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자율화 따라 '투명성 지침'도 사라지고…학운위가 견제 구실 할까

입력
2008.04.29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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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모 중학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인 A(44ㆍ여)씨는 지난해 학운위에서 교복을 공동구매하기로 결정한 뒤 다른 학부모 위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교장이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니 공동구매를 없던 일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다른 운영위원들이 전부 동의했다며 A씨에게도 협조를 종용했다. A씨는 “학교장 승인까지 난 사안이었지만, 나만 거부할 경우 아이가 어떤 불이익을 당할 지 몰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씁쓸해 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과 세부 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학교 투명성 관련 지침들을 대거 폐지했다. 모든 학교에 학운위라는 감시 기구가 있어 정부 통제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이유에서다. 학운위가 학교장의 전횡이나 독단적 의사결정을 막는 견제 장치로서 충실한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1995년 ‘교육개혁의 꽃’으로까지 불리며 탄생한 학운위가 학교 자율화에 일조할 정도의 능력과는 거리가 먼 탓이다. 심지어 ‘유명무실한 기구’라는 냉소적 반응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정부가 학운위 실상을 제대로 모른채 학교 투명성 관련 지침을 없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운위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학운위 성패를 사실상 좌우하는 운영위원 선출 과정부터 비민주적이다. 전국 초중고교 중 학부모 직접 투표를 통해 학부모 위원을 선정한 학교는 전체의 95%다. 언뜻 민주적 절차를 거친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울산 B고는 전체 학부모의 10%에도 못미치는 30여명의 학부모가 투표에 참여했지만 전체 직선을 실시한 것으로 보고됐고, 경기 안산 C초등학교는 후보들이 10여표에 불과한 득표를 하고도 학부모위원에 뽑혔다. 이전의 육성회장이나 어머니회장과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비아냥을 듣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교원위원과 지역위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숫자상 평교사 보다 훨씬 적지만, 교원위원 가운데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보직교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41%나 된다. 지역위원도 학부모위원과 교원위원이 협의해 선출토록 되어 있는 규정 때문에 교장의 입맛에 어긋나는 인사를 위촉하기란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운위 본령인 심의나 자문 기능은 형식적이기 마련이다. 학교 운영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예ㆍ결산소위원회가 구성된 학교가 10곳 중 3곳에 그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주부(37.4%)나 자영업 종사자(30.3%)가 운영위원 다수를 차지한 영항이 크다.

제주 H초등학교의 한 학부모 위원은 “교장을 제외한 다른 운영위원들이 새로운 안건을 제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회의를 해도 교장 의견에 대한 찬반을 묻는 거수기 역할에 그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위상 변화에 걸맞게 학운위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김정명신 회장은 “학운위 운영 실태에 비춰 볼 때 학교 자율화 조치는 교장의 자율이나 다름없다”며 “실질적인 학교 운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심의기관에 불과한 학운위를 의결기구로 격상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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