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미드 지음ㆍ이종인 옮김/연암서가 발행ㆍ404쪽ㆍ1만2,000원
지극히 통속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스캔들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협동 관계인가? 학문의 명징한 세계는 빈틈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일에는 인간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끼어 들게 마련이다. 각각 학문적으로 견고한 성채를 쌓아올린 동성애적 관계의 두 학자는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그녀는 나보다 15세 연상이지만 인류학에 입문한 것은 나보다 3년 정도 앞설뿐이다.” 1974년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를 한 권의 책으로 기억했다. 25년 동안 동료 학자로서, 다정한 벗으로서, 때로 연인 사이로서, 둘은 관포지교도 못 따라올 관계를 유지했다. 이 책은 1948년 베네딕트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뜬지(61세) 26년 뒤에야 나온 것으로 영혼의 동지가 학문적으로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기록이다.
1922년 미드는 대학생으로, 베네딕트는 조교로 조우했다. 이후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된 그들은 둘도 없는 인간 관계를 키워 간다. “나는 그녀가 쓴 글들은 모두 읽었고, 그녀 또한 내가 쓴 것이라면 모두 읽었다.” 미드가 쓴 글이지만, 베네딕트가 썼어도 똑같은 내용이다.
인간으로서 두 사람은 평탄치 못했다. 베네딕트는 화학자와 결혼, 불행한 가정 주부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미드도 마탄가지였다. 세 번의 결혼은 모두 실패로 끝났는데, 공격적 성취욕 탓에 인간 관계를 홀대하고 출세 지향적이었다. 두 사람간의 연대와 이해는 상대적으로 더 깊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1930년대, 미국의 대학에서도 극명했던 성차별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여교수들은 남자 교수들의 식당에 들어갈 수 없었고, 인류학과가 소속된 사회과학대학은 아예 남성 전용 클럽이나 다름 없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베네딕트는 20세기 전반기의 위대한 여성 학자지만, 생시에는 남자 학자들 사이에서 과소 평가됐던 것이다.
이 책은 그러나 미드와 베네딕트 간의 성적 관계를 은폐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베네딕트는 40대 초반이 되던 1930년대 초에 레즈비언이 되기로 했으며, 미드는 1930년대 후반 결혼하면서 양성애를 선택했다. 책은 그러나 이들이 “기이한 방식으로 매력적이었다”는 등 모호한 표현을 쓰고 있다.
번역자는 이 책을 두고 “마거릿 미드가 먼저 간 친구에게 보내는 생애 마지막 편지”라고 정의했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의 로이스 배너 교수는 “이 책은 기본적으로 베네딕트에 대한 간결한 전기이므로 미드는 둘 사이의 스캔들 또는 살아있는 자들을 난처하게 할 내용은 제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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