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론물리학에서 초끈 이론의 위기에 대한 글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함께 아우르며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초끈이다. 요즘 들어서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프로그램과 과학서적에 갈수록 자주 등장해서 저자를 돈방석에 앉혀 주기도 한다.
그 주된 주장은 우주가 3차원 공간에다 1차원 시간을 합한 4차원이 아니라 실제로는 한 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끈이며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7차원이 더해져서 우주는 11차원이라는 매력적인 또는 허무맹랑한 이론이다. 26차원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버드 프린스턴 스탠포드 버클리 MIT에서 최근 영년직을 받은 이론물리학자 22명 중 20명이 초끈 전공자이고 미국 고등과학원 물리학부도 마찬가지다.
한데 이렇게 다수의 위력으로 다른 물리학자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침묵하게 만드는 초끈이 사실은 이론물리학의 발달을 수 십 년 동안 저해하고 있다는 심각한 주장이 두 사람의 물리학자에 의해서 연달아 제기되었고 상당수 물리학자들이 그들의 주장에 좋은 평가를 내렸다. 물리학에서 실험과 이론이 이렇게 멀리 떨어진 적은 없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그들의 주장은 책으로 나왔는데, 그 하나는 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학의 문제점:초끈의 등장, 과학의 몰락, 그 다음에 올 것)> 이다. 그들의 주장이 충격적인 이유는 물리학계 내부에서만 의심하던 시선이 마침내 일반 독자들 앞에까지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독자에게 잘 알려진 파인만도 초끈은 그 이론이 맞는지 아닌지를 실험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예측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었다. 물리학의>
주요 쟁점은 대략 이렇다. 초끈에 따르면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우주가 컵 속의 맥주거품보다 더 많이 있으며 그 수는 대략 1 다음에 동그라미를 500개 붙인 것 만큼이고, 우리는 그 수많은 우주 중 하나에 살고 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우리가 어떤 우주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어라? 이 우주가 아니었나 봐”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하자면 또 다른 평행우주에서는 독자가 첫사랑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슴 한 구석을 훈훈하게 덥혀주는 흥미로운 주장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공상과학소설과 과학을 구별해야 한다. 이 부분이 특히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데, 한 쪽에는 그런 것은 종교라고 불러야지 그게 무슨 과학이냐? 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검증할 방법이 없더라도 어려운 수학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해 놓은 주장은 과학으로 쳐 줘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론을 만들어서 새로운 사실을 예측하고 실험으로 확인하던 지금까지의 과학적 방법을 포기한다면 그나마 남은 것은 수학적으로 얼마나 멋있는지 살펴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책의 제목에 나오는 과학의 몰락은 이것을 의미한다. 양자계산으로 유명해진 피터 쇼는 초끈 이론가들이 어딘가에 현혹되어 길을 잘못 들었다고 평가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초끈에서는 그렇게 많은 우주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왜 수학적 논리는 그 많은 우주에서 모두 통하는 단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한상근 KAIST 수리과학부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