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차현숙(45ㆍ사진)씨가 세 번째 소설집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 (이룸 발행)를 펴냈다. 두 번째 장편 <안녕, 사랑이여> (2002) 발표 후 6년 만이다. 1994년 등단 이래 장편과 단편집을 두 권씩 내면서 도시 기혼 여성들이 겪는 현실과 욕망의 갈등을 천착했던 차씨에게 이번 책은 각별할 듯하다. 안녕,> 자유로에서>
스스로 작가 후기에 밝혔듯 1999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기점으로 6년간 이어진 중증의 우울증을 극복하고 펴낸 책이기 때문이다. 후기엔 “양쪽 손목을 커트 칼로 그어댄 그날, 그 밤의 고독은 평생 잊을 수 없다”는 구절도 있어 당시의 고통을 엿보게 한다.
수록작 6편 중 표제작을 비롯한 4편은 우울증을 앓던 시절에 관한 자전 소설이다. 최근작인 ‘세상 모든 문이 닫히던 날’(<현대문학> 2007년6월호)은 손목을 자해한 뒤 응급실에 실려온 일을 모티프로 했다. 순차적 시간을 조각내 뒤섞어 배치한 구성이 ‘나’의 정신적 혼돈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현대문학>
2002-2003년에 발표된 다른 세 작품-표제작과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종이인형’-은 어머니의 치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를 소재로 한다. 동일 인물로 봐도 무방한 작중 화자-우울증에 빠진 중년 여성-들은 노부모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면서 그 뿌리를 이루는 신산한 가족사를 들춘다.
부모는 각자 배우자와 거기서 얻은 자녀를 떨치고 도망치듯 서울로 와 고단한 삶을 꾸린다. 두 사람 사이엔 딸(주인공)과 아들이 태어나지만, 생계에 치인 이들의 양육법은 살가움보단 무관심에 가깝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이전의 혼인 관계가 자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초등학생이 된 딸에게 가정환경조사서를 받아든 아버지는 어딘가 다녀오더니 종잇장을 도로 집어던진다. “엄마의 이름이 없다. 나는 아주 낯선, 이름 모를 여자의 둘째 딸이 되어 있다.”(98쪽) 외할머니가 신병을 앓았다는 어머니의 뒤늦은 증언을 듣고 화자는 제 몸에 “할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불안과 공포”(61쪽)에 젖는다.
기억의 봉인을 뜯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상처의 응시 없이 치유는 없다. 작품 속 차씨의 페르소나들은 어떤 욕된 기억에도 눈감지 않음으로써 쓰린 개인사를 완성한다. 자기 삶의 맥락을 찾았으니 고될지언정 더는 방황하는 일이 없을테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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