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출근 준비를 하면서 라디오를 듣다가 한참동안 웃어야 했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좀처럼 웃지 않는 내가 소리까지 내면서 웃은 이유는 서울 강남에 특목고 대비 유치원이 등장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다섯 여섯 일곱 살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 논술을 가르친다는 뉴스에서 웃음이 뛰쳐나왔고, 시험문제 풀이 위주라는 대목에서 입은 조금 더 벌어졌는데, 수업료가 200만원이 넘는다는 말에서는 소리까지 터져 나와 아내의 눈총을 받고 말았다.
유치원 꼬맹이들이 배우면 무엇을 얼마나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배운 것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잃은 것은 없는 것일까? 얻는 것만 중요하고 잃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소탐대실(小貪大失)임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정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학생들에게 득실론(得失論)을 이야기한다. 득(得)만 생각하지 말고 실(失)도 함께 생각하여야 한다고 외친다. 한반도 대운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잃어 버리는 것도 생각할 줄 알아야 현명하다고 강조한다. 공격도 중요하지만 수비도 중요하다고 속삭인다. 친구가 사 주는 밥값만 계산하지 말고 만나기 위해 소비한 시간과 교통비도 생각하라고 일러 준다.
선생을 하면서도 나는 오랫동안 좋은 선생님에게서 훌륭한 강의를 들어야만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회의가 들었다. 좋은 강의와 실력 향상 사이에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극히 미약하고, 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의지와 노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선생님으로부터 똑같은 시간 똑같은 강의를 들었음에도 실력차가 나는 것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는 학생이 책으로 한다”를 외치곤 한다.
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일반적인 사실을 왜 외치는가 하면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 아니 학원강사나 과외선생님이 공부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 따로 있고 못 가르치는 선생님 따로 있음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잘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에게서 배워야 보다 효율적이라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결정하는 것은 학생이지 결코 선생이 아니다.
공부는 책으로 하는 것이다. EBS 강의를 시청해 본 적이 있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되 효율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가장 중요한 단점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고, 내가 생각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미리 다 생각해 준다는 점이었다. 나는 사고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긴 채 수동적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고 실력 향상 대신 짜증만이 찾아왔던 것이다. 역시 텔레비전은 바보상자였다.
그런데 그 바보상자가 학력 신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속삭이며, 사교육비를 경감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우리 앞에 폼 잡고 선 지 꽤 오래 되었다. 다시 강조한다. 공부는 책을 가지고 생각하면서 해야 가장 효율적이다. 선생님에게 배우는 일도 필요하고, 미디어 매체가 필요한 과목도 있고, 방송 인터넷 강의가 효율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책을 가지고 깊이 생각해가면서, 실력에 맞게 속도도 조절해 가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사전 참고서 등을 활용해 확실하게 알아가면서 하는 공부가 보다 효율적이다.
특목고 대비 유치원까지 생기게 된 상황이 안타깝다. 그리고 많이 배워야만 많이 알 수 있다는, 비싼 돈 들여 원어민 강사에게 배워야만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대입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는, 명문대학을 나와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비웃음을 보내고 싶다. 아! 안타까운 대한민국의 교육이여. 정말로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이다.
권승호 전주영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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