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7년간 기업인으로서 공무원들을 상대했었다. 공무원들과 각종 규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이른바 '을(乙)의 추억'이다.
그 경험이 현재 이 대통령의 공무원관(觀)을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측근들은 "이 대통령이 누구보다 공무원의 문제점을 절절히 느꼈고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대통령은 취임 후 두 달간 "공무원 정신차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인수위 시절 공무원들의 철밥통에 대한 경고를 시작으로,'얼리 버드(early bird)'라며 공무원들에게 새벽 출근을 종용했고, '머슴론'을 설파했다. 국무회의에서는 '모피아'를 거론하며 관료들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철밥통 공무원의 탁상 행정과 규제 남발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질타는 국민들로부터 "속 시원하다"는 찬사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한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은 27일 공직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정권 초기엔 으레 공공개혁 구호가 횡행하지만 반짝하다가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 그럴 것 같지 않다는 걱정들이 많다."
이 대통령의 관료에 대한 반감은 조만간 단행될 공기업 임원 인사에서 관료출신이 철저히 배제되고 민간인 출신이 대거 기용될 것이란 관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노선에 대해 긍정적 시각도 많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한 여당 중진의원은 "자칫 민간은 선이고 관료는 악이라는 유치한 이분법적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는 민간 전문가라는 허울만 걸친 무자격ㆍ무능력자들이 판치는 또 다른 폐해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내각, 청와대 인사에서 도덕적 흠결로 낙마한 인사들은 대부분 학자 등 민간인 출신이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민간인에 대한 이 대통령의 과도한 선호와 관료에 대한 필요 이상의 적대감이 인사실패의 한 요인이 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솔직히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민간인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토로한 바 있다.
보수언론에 대한 정치인 노무현의 부정적 기억은 대통령 노무현에게 언론개혁 이란 이름의 대못질 정책을 낳게 했다. "이제 언론과 맞붙어 싸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그의 기개에 국민들도 처음엔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언론을 향한 그의 집요한 적대의식은 참여정부의 실패에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공공부문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공무원을 더 이상 적이 아닌 동지로 만드는 새로운 방법론의 모색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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