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 느린걸음'
1992년 4월 29일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중앙상임위원장 백태웅(45) 등 39명이 구속됐다. 당시 안기부의 발표에 따르면 6ㆍ25 이후 남한에서 자생적인 최대의 비합법 사회주의 혁명조직이었던 사노맹 사건은 그로써 일단락됐다. <노동의 새벽> (1984)의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51)의 얼굴이 7년 만에 세상에 알려진 것은 사노맹 사건으로 해서였다. 박노해는 그 한 해 전인 1991년 3월 사노맹 중앙상임위원으로 구속됐다. 노동의>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노동의 새벽’ 부분)
한 편의 시 혹은 한 권의 시집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면, <노동의 새벽> 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런 시집이었다. 이 시집에 실린 42편의 시는 그대로 1980년대 한국사회 변혁운동 - 노동운동, 민중운동, 학생운동의 텍스트가 됐다. 노동의>
<노동의 새벽> 이 나온 지 24년, 박노해는 이라크와 레바논 등지에서 평화활동을 하고 있고, 백태웅은 캐나다에서 법학교수가 됐다. 출간 20주년이던 2004년, 이 시집의 출판사도 세번째로 바뀌었다. 새 책의 뒷표지에 실린 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글이 눈길을 잡아 끈다. “… 한국이 스스로 조국이 되어 나에게 다가온 것은 <노동의 새벽> 을 읽고부터였다.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였다… 그때부터 한국은 내 고통과 희망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땅, 나의 조국이 되었다. 나는 ‘하늘’( <노동의 새벽> 맨 처음에 실린 시)을 하늘의 별만큼이나 자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노동의> 노동의> 노동의>
그 시들은 철 지난 노래가 아닌 것이다. ‘화창한 일요일/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상의 웃음 속에서도/ 보장 없는 내일에/ 짙은 불안이 엄습해 온다’(‘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부분). 시대는 변하더라도 ‘노동’이 계속되는 한, 이 시집의 시들은 그렇게 울림을 가질 것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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