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막바지였던 1987~88년의 겨울, '서방 세계'의 수도인 뉴욕엔 약 7만 명의 '홈리스'가 존재했다. 노숙자가 넘쳐나는 부자 도시 뉴욕의 모습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는 세기말적 풍경으로 해석됐다. 특히 이방인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도 그러한 사회 문제에 성공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 폴란드에서 온 괴짜 예술가 크르치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ㆍ65)가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거리에 <노숙차> (Homeless Vehicle, 1988-1989)를 선보이기 전까지는. 노숙차>
자신의 작업 스타일을 '의문의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보디츠코는, 노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생활에 상응하는 <노숙차> 를 개발, 여러 형태의 프로토타입을 실생활에서 시험했다. 지금까지도 '노숙차 프로젝트'는 미술계와 디자인계 모두에서 '정치적 공공 미술'의 전설적 사례로 회자된다. 노숙차>
보디츠코는 노숙자의 유목민적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했다. 많은 노숙자들이 쇼핑 카트를 끌고 다니며 고물을 모아 생계를 유지했다. 따라서 작가는 그를 기반으로 노숙자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인력 기반의 운송 기기를 만들어보기로 작정했다.
훗날 그는 "노숙차를 통해 노숙자들에게 가시성을 부여하고, 길거리와 노숙자 수용시설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에 제3의 공간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가 중시한 제1의 기능은 '이동성'이었고, 제2의 기능은 '안전'이었으며, 제3의 기능은 '적용성'이었다. 초기 모델은 남성을 기준으로 디자인됐지만, 후속 모델은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사용자의 삶에 부합하도록 개선됐다. 심지어 수집한 헌 책과 헌 옷 등을 판매할 수 있도록 매대로의 변형이 가능했다.
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기능은 <노숙차> 를 확장하면 간이 숙소가 된다는 점이었다. 숙소로 사용하려고 확장하면 그 크기가 3배로 커지는데, 사실 직접 보면 황당할 정도로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경찰에 맞서는 시위용 캠프가 될 수 있도록 고안됐다'는 <노숙차> 는 여러 대를 합치면 캡슐 호텔 같아 뵈기도 한다. 노숙차> 노숙차>
이는 뉴욕시 당국의 약점을 제대로 찔렀다. 당시 뉴욕 경찰은 "동절기에 노숙자 숙소를 거부하고 노숙을 선택하는 사람은 정신 질환자로 간주한다"는 정책을 내세워, 사실상 겨울에 노숙자들을 시설에 강제 수용 조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숙차> 는 겨울에도 노숙자가 동사의 위험 없이 개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왔다. 노숙차>
프로젝트에 참가한 노숙자들은 <노숙차> 를 끌고 보란 듯 뉴욕 시내를 누볐다. 다급해진 경찰 당국이 꺼내든 카드는, '주차 위반'이었는데, 이는 곧바로 대중의 비웃음을 샀다. 노숙차>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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