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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수박씨

입력
2008.04.29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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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란 글ㆍ김동수 그림/창비 발행ㆍ104쪽ㆍ8,500원

‘주사실로 질질 끌려간다/꼼짝 마!/엎드려!/손 머리로!/주사기한테 나는 포로다/이제 난 죽었다’ (‘감기’)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비록 세상에서 엄마 다음으로 예쁜 간호사 언니들이 사탕과 장난감을 안겨준다 해도 열에 아홉은 주사 맞는 것을 꼽을 것이다. 고작 감기 한 번 걸린 것 가지고 주사를 맞으러 가야하는 아이의 억울함과 불안감은 수용소로 끌려가는 전쟁포로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다.

지난 해 한자 하나하나에 숨은 뜻을 재미난 시로 그려낸 동시집 <하늘天 따地> 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던 최명란(45) 시인은 동시집 <수박씨> 에서 아이의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아이의 마음으로 관계를 가꿔가며, 아이의 상상력으로 생각을 키워간다.

꿀맛 같은 아침 잠에 빠져있다가 ‘일어나서 학교에 가야지!’ 라는 엄마의 채근에 못 견뎌 간신히 눈을 뜬 아이의 마음을 담은 것 같은 ‘잠’ (엄마!/잠 좀 쫓아내지 마세요/불쌍하잖아요)이나 어제는 두 줄로 식탁을 기어갔으나 오늘은 한 줄로 식탁 위를 행진하는 개미들을 보며 ‘모두 짝이랑 싸웠나봐요’ 라고 귀여운 상상을 하는 ‘사이좋게’, 다리 수술을 한 외할머니의 불편한 걸음걸이를 보면서 ‘한 발 한 발/걸음을 떼어 놓아요/여든 살 외할머니가/다리에 인공뼈를 끼우고/다시 한 살이 되었어요’ (‘걸음마’) 라고 표현한 동시 등에서 생생히 엿볼 수 있다.

아픈 엄마가 불쌍해 같이 아파하기 위해 문틈 사이에 손가락을 끼웠다가 엄마가 가슴아파하자 ‘내가 엄마의 분신이라는 걸 깜박 잊었다’(‘분신’)고 고백하거나, 손금의 생명선이 끊기면 오래 못 산다는 소리를 들은 뒤 짧은 엄마의 손금을 보고 ‘나는 엄지 손톱으로 꾹꾹눌러/엄마의 끊긴 손금을 이어주었다’ (‘손금’)고 실토하는 작품들에서는 아무리 어른이 된 척해도 엄마 아빠의 품에 안겨 어리광 부리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고, 시나브로 마음이 따듯해 지는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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