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축축한 날, 화톳불 옆에 모여 맥주를 들이키며 이웃의 결혼과 장례, 출산 등 대소사를 떠들던 아일랜드식 선술집의 풍경도 이제 옛말이 되고 있다. 아일랜드 문화의 대표적 상징이던 ‘아이리쉬 펍(Irish pub)’이 경제적 풍요에 밀려 고급 레스토랑과 아늑한 커피숍 등에 자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최근 3년간 시골 선술집(pub) 1,000여개가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6,000여개에 달했던 펍 규모도 조만간 3,500개 정도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단순한 술집을 넘어 시골 이웃의 정겹고 시끌벅적한 소통공간이던 선술집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급속한 성장과 경제적 풍요로 젊은 세대가 더 이상 시끄럽고 값싼 선술집을 찾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들은 대신 평일에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조용한 커피숍을 찾고 주말이면 스페인 등 날씨가 화창한 해외로 나간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초만 해도 일거리 없던 가난한 나라였지만,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로 고속 성장을 일궈내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진입을 눈앞에 둔 부유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젊은 세대의 취향 변화에 맞춰 일부 선술집은 커피를 팔며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아일랜드 양조협회의 마이클 오키페 대변인은 “몇 년 전 누가 선술집에서 카푸치노를 주문했으면 미친 사람 취급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 노년층의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남았던 선술집이 문을 닫은 아일랜드 서부 코널리의 한 주민은 “이제 퇴근 후에 어디로 가고, 어디서 우리 모두가 만날 수 있느냐”며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서부 개발위원회의 패트리시아 오하라씨는 “젊은이들은 휴대폰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교류하지만, 노년층은 아일랜드의 빠른 변화에 점점 더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며 “번영의 결과로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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