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 주류업체 K팀장은 최근 “술병에서 나뭇가지가 나왔다”는 신고를 받고 깜짝 놀라서 현장으로 뛰어갔다. 고객이 있던 식당에 들어가 술병의 이물질을 꺼내 보니 앞에 놓인 반찬 중 하나인 고사리였다. K팀장은 “식사 도중 반찬이 우연히 술병 안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신고자는 막무가내로 보상을 요구했다.
결국 술값을 대신 내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K팀장은 “최근 농심 새우깡의 이물질 파동으로 식품업계 전체가 소비자들의 불신을 사면서 엉뚱한 요구를 해오는 고객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2. 참치 캔에서 칼날이 나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동원F&B는 며칠 전 “참치 캔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며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에게 현금 500만원과 참치제품 200만원 어치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 소비자는 다른 업체에도 비슷한 요구를 했던 ‘블랙컨슈머(직업적인 문제 제기자)’라는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더욱이 다른 업체들이 사건 무마에 들인 비용은 수십 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 동원F&B는 또 한번 구설수에 올랐다. 동원F&B 서정동 팀장은 “약점을 잡힌 상황이다 보니 무리한 요구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게 된다”며 “요즘 경제 사정이 어렵기 때문인지 블랙컨슈머들이 더 극성인 것 같다”고 말했다.
‘생쥐깡’과 ‘칼날 참치캔’으로 식품업계가 홍역을 치르면서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28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이물질 파동 이후 소비자들의 불만 제기 건수가 그 이전에 비해 2~3배 가량 늘어났다. D업체의 경우 하루 평균 30여건이던 소비자들의 불만 제기가 최근 80~90여건으로 폭증했다. D업체 관계자는 “이 중 절반 정도는 보상을 노린 ‘자작극’으로 추정되지만,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어 애만 끓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식품업계가 블랙컨슈머의 농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선 식품 사고의 특성상 원인 규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농심 ‘생쥐깡’의 경우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회사 측이 공동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 공장까지 정밀 검사를 했지만 생쥐 머리의 유입 경로를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 최근 “플라스틱 조각이 사발면에 들어있다”는 신고도 결국 소비자의 책임으로 결론 났지만, 금품을 노린 의도적인 신고였는지 단순 실수였는지 파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블랙컨슈머도 고객인데다 악성 소문을 퍼뜨려 기업 이미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식품업계가 속앓이를 하는 주요인이다. CJ 관계자는 “음식을 다 먹고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집어넣은 소비자를 붙잡았지만 용서를 구해 그냥 돌려 보낸 적이 있다”며 “미우나 고우나 고객인지라 형사 처벌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선 식품도 다른 제품과 마찬가지로 불량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이물질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삼는 건 지나치다는 불만도 제기한다. M사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건강과 직결된 식품에서 워낙 엽기적인 이물질이 나와 파문이 커진 것 같다”면서도 “반도체나 컴퓨터도 불량이 있듯이, 식품도 불량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형영 기자 truest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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