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새 정부 고위 공직자 103명의 첫 재산 공개에서 공개 대상자 4명 중 1명(24.3%)의 직계 존비속이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행정ㆍ입법ㆍ사법부 재산 공개 때는 2,171명 가운데 669명(30.8%)의 직계 존비속이 재산을 등록하지 않았다.
이처럼 공직자 재산 공개 때마다 직계 존비속의 ‘재산고지 거부’가 반복되면서 재산 공개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재산고지 거부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현행 공직자윤리법 14조(성실등록의무)는 공무원의 직계 존비속 등이 피부양자가 아니면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재산신고사항 고지를 거부할 수 있다. 즉, 고위 공직자에 의지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태임이 입증된 경우 재산 공개 대상에서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윤리위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부양을 받지 않는데도 고위 공직자의 직계 존비속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공개하는 것은 재산권을 침해 받을 소지가 있다”며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직계 존비속도 일반인과 똑같이 여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이재근 팀장은 “재산 증여가 활발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자식들의 재산이 모두 스스로 번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재산을 직계 존비속에게 넘긴 뒤 공개를 거부하면 끝”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어 “장남과 손자가 재산 고지를 거부한 한승수 국무총리도 본인 재산은 20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며 “땅값, 아파트값이 오른 것을 감안하면 어딘가 석연치 않고 자식들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모호한 재산고지 거부 신청과 허가 과정도 이 같은 의문을 부채질하고 있다. 윤리위에 따르면 재산고지 거부를 원하는 직계 존비속은 공직자 임용일로부터 10일 안에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또는 소득금액증명원을 내고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임용 후 15일 안에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국회ㆍ대법원ㆍ헌법재판소ㆍ중앙선관위ㆍ정부ㆍ지방자치단체ㆍ시도교육청 등에 설치된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알아서 허가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 관계자는 “직업 및 장기소득 유무,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넘어서는 지 등을 살펴보라고 지침을 내리긴 하지만 강제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즉 최저소득은 살펴 보지만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지는 전혀 검증하지 않고 있고, 이 때문에 고위 공직자들이 재산 숨길 곳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정부공직자윤리위는 직계 존비속의 재산고지 거부 신청 사유를 공개하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요청을 줄기차게 거부하다 지난해 12월 참여연대가 소송에서 승소하자 마지못해 내용을 공개했다.
참여연대는 2004년 직계 존비속의 재산도 모두 공개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 모두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재근 팀장은 “이번 재산 공개로 이명박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어느 정권보다 재산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투명한 공직 사회 유지라는 재산 공개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직계 존비속의 재산 내역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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