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총선 개표방송을 보면서 지상파 방송 3사가 출구조사의 예측을 기술적으로 너무 과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적 관심사인 총선보도에 총력을 다하는 방송사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구조사라는 기술을 통한 예측과 실제 선거 결과라는 현실과의 차이에서 현 사회의 기술적 정보 전달과 현실의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료타르는 1979년 저서 <포스트모던의 조건> 에서 과학적 담론의 정당성, 특히 증거에 대한 관리의 정당성의 새로운 조건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기술의 발전이 지니는 역할을 설명한다. 포스트모던의>
그는 현실과의 관계를 가장 적합하게 알아 차릴 수 있게 하는 기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모습들의 관계를 보다 세밀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는 것은 현실에 있어서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의 실행력 그 자체이다.
기술은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적 우수성, 실행 능력을 통해서만 인정 된다. 그래서 기술을 통한 증거 관리의 평가는 진실의 문제에서 기술 그 자체에 대한 평가로 전이 된다. 이것이 현대사회의 정보의 전달과 기술 발전 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21일 전체회의에서, 제18대 총선개표방송의 예측조사방송에 대한 심의 결과를 내놓았다. 선거방송심의위는 3개 지상파 방송에 무제재 조치를 내렸다.
아울러 선거방송심의위는 “KBS의 경우 지체 없이 정정보도를 해야 하는 규정에는 미흡하여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방송사들이 면죄부를 받은 꼴이 됐지만 그것은 단지 법 적용의 문제일 뿐이다.
4년 전 제17대 총선 예측조사방송 때 방송 3사는 중징계를 받았다. 물론 그 4년 전에도 유사한 결과였다. 그 후 방송사들은 선거예측조사방송의 시스템을 정비하고 개선한다고 했다. 방송사들은 많은 돈을 들여 경쟁적으로 제작한 사이버 스튜디오와 화려한 그래픽을 내 보이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원천적으로 출구조사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그 결과를 방송함에 있어 보다 적절한 방식을 찾기 이전에 관성적으로 시스템을 정비한 꼴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진실을 알리기 보다도 기술의 실행능력이 우선시 되었던 것. ‘외화내빈(外華內貧)에 빈 수레가 더 요란한 꼴’이라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방송사들은 유권자인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결과를 알려주어 시청자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시청률 경쟁에 보다 더 심혈을 기울였다.
출구조사를 통한 예측이라고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추정 의석수의 예측치 폭을 넓게 잡고 의기양양하게 확신 보도를 한 것도 문제다. 한계가 많은 출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도하면서도 결코 주눅들거나 주저함 없는 당당함과 용기를 보여준 것이다.
아프면서 성숙한다 했던가. 그래도 방송사들은 4년 전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다. 예측조사방송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중징계를 피하기 위해 즉각적인 사과방송을 내보내는 놀라운 판단력과 순발력을 보여 준 것이다.
방송사들은 이러한 예측조사방송에 20억~30억원의 돈을 들였다. 방송사들은 이 돈이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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