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기를 제거한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사람이나, 자식의 성(性)을 인정하지 않는 저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내 아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장애인의 성 문제를 공부하게 됐고, 이제는 강사를 양성하는 수준까지 왔죠.”
김명실(53)씨는 아직도 금기시 되고 있는 ‘장애인의 성’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장본인이다. 그는 정신지체 장애인인 딸(24)을 돌보며 얻은 경험을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 부모와 장애인, 특수시설 교사 등과 나누기 위해 2005년 모임을 만들었다.
장애인을 ‘제나’(제것으로서의 온전한 자신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처럼 돌보자며 이름도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로 짓고 센터장이 됐다. 이후 정신지체 장애인도 성적 권리를 존중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이념적인 부분부터 장애인 성폭행 예방법, 자위와 뒷처리 방법 등 구체적인 기술까지 가르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김씨는 평범한 가정 주부였다. 딸에게 이상 징후가 발견된 것은 네 살 무렵. 갑자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신경질이 늘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처음엔 다른 애들을 피해 자전거를 뒤집어 놓고 바퀴 돌리기에만 열중하는 딸이 자폐증에 걸린 줄 알았다. “곧 정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어요. 왜 어제까지 하던 일을 오늘 못 하는지, 출근하는 아빠에게 손수건을 가져다 주고 인사를 하던 아이가 왜 눈조차 맞추길 거부하는지 몰랐어요.”
김씨가 딸의 병명을 안건 13년이 더 흐른 뒤였다. 병명은 레트(Rett) 증후군. 레트 증후군 환자는 이유없이 온 몸의 신경체계가 손상돼 지적 능력과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김씨의 딸은 말은 물론이고 혼자서 밥도 먹지 못한다.
‘네 살 때부터 딸을 수발하고 키우느라 힘들었겠다’는 물음에 김씨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정말 힘든 일은 사춘기를 겪으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정신은 두 살인데, 가슴이 솟고 초경이 시작되는 등 육체는 성숙한 여성이 됐습니다. 10대 후반에는 거실 소파에 음부를 비벼대기 시작했습니다.” 김씨의 딸도 정상인처럼 성욕을 갖게 됐고, 그런 욕구를 자위행위로 해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부터 김씨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딸을 붙잡고 성교육을 시작했다. “자위 행위는 남들이 없는 곳에서 혼자 하는 것이라고 설득해 방으로 들어가는데 1년 6개월이 걸렸다”는 그는 “딸을 행복하게 키우고 성폭력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 결국에는 다른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보호하는 일로 커졌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장애인의 성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가장 큰 이유는 정신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남의 말을 쉬이 믿어 버리는 경향 때문에 성폭력조차 타인과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어느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한 여성 장애인이 마음에 든 한 남성 장애인에게 ‘나랑 (성관계)하자’고 하는 걸 봤습니다. ‘좋아하니 자야 한다’며 달려든 장애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성 관계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표현’이라는 등식을 얻게 된 이 여성은 남성이 마음에 들면 무조건 성관계를 요구합니다. 이런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주장하지만 그도 딸의 결혼에 대해서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딸이 결혼한다면 시켜야죠. 문제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겁니다.
프랑스에서는 정신지체 장애인끼리 아기를 낳으면 대리 부모를 정해줘서 아기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키우도록 합니다. 아직 한국은 그러지 못하니 솔직히 결혼을 승낙할 자신이 없습니다.”
■ 뇌성마비장애인들에게 물었더니
"우리도 성적 욕구가 있는 사람입니다."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우리에게 성 도우미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장애인 성 상담ㆍ토론 커뮤니티 '장애인 푸른 아우성'이 최근 뇌성마비 장애인 6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장애인들은 한 목소리로 "성 인권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조사결과 성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73%로, 남성(82.8%)이 여성(63.0%)보다 높았다. 문제는 장애인의 4분의 3이 성 경험이 있는데도 상당수 가족들이 이들을 '성적 욕구를 가진 존재'로 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험이 있는데도 대부분의 가족들은 성적 욕구가 있는 존재로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성 장애인 51.5%, 여성 장애인 26.0%만이 '가족들이 자신에게도 성적 욕구가 있음을 존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장애 여성 B(35)씨는 "가족들이 '몸도 가누기 힘든데 무슨 결혼이냐'고 말할 때가 가장 힘들다"면서 "사귀는 사람이 있어도 결혼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여성 장애인 중 '주변에서 이성교제나 결혼하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응답자가 77.8%에 달했다.
장애인들은 '성 도우미'제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성 도우미가 필요하다고 답한 장애인은 전체 응답자의 68.3%나 됐다. 남성 장애인의 78.8%, 여성 장애인의 55.6%가 도우미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장애 남성 L(32)씨는 "손을 움직일 수 없어 자위 행위도 할 수 없다"며 "직접적인 성 관계를 하지 않더라도 자위 행위를 도와주는 등 도우미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조윤경 '장애인 푸른 아우성' 대표는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가족들조차 장애인의 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성 도우미 등 장애인 성 문제 해결방안도 필요하지만, 장애인도 정상인과 같이 성적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먼저 조성돼야 대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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