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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현실 사이 '시고기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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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현실 사이 '시고기의 정치학'

입력
2008.04.24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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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협상 결과를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다. 하지만 여기엔 정쟁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에 대한 국가의 역할 문제가 그것이다.

과거 우리 사회가 수출 주도형 성장에 주력했을 때 농업부문은 가장 큰 희생자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성론자들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보면 쇠고기 협상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일 수 있고, 정부ㆍ여당은 수세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야권으로서는 협상 자체의 문제점, 협상 결과에 따른 대책 등을 추궁하는 게 당연하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정치적 명분도 크다.

향후 논란의 추이는 정부가 '협상 이후'를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경제논리로만 풀 수 없는 소외계층에 대한 국가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대목이다.

■ 민생 앞세워 공동전선 野 "쇠고기 청문회 열자"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권이 23일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청문회 개최에 합의했다. 이념과 노선이 상이한 야권이 민생문제를 계기로 공동전선을 펴며 대정부 압박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당 김효석, 선진당 권선택, 민노당 천영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야3당 원내대표회담을 갖고 “쇠고기시장 전면 개방에 대한 진상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해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개최한다”는 데 합의했다. 3당 원내대표들은 청문회를 통해 ▦쇠고기 수입협상 경위와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 ▦수입 쇠고기 안정성 문제에 대한 과학적 검증 ▦검역주권의 문제 ▦축산농가 대책 마련 ▦협상 무효화 추진 및 보완 대책 등 5가지 사항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3당은 또 청문회를 통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이 미진할 경우 국정조사도 실시하기로 했다.

3당은 “쇠고기시장 전면 개방은 전 국민의 생명ㆍ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한나라당은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정체 공세라고 폄하하면서 민생을 외면해선 안 된다”며 한나라당의 청문회 참여를 압박했다.

앞서 민주당 김효석 원내대표는 “쇠고기시장 개방은 단순한 축산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식탁, 어린 학생들의 건강에 관한 문제”라며 “시장개방 과정의 진상을 규명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초 국정조사를 당론으로 추진했던 선진당은 민주당의 청문회 개최 요구에 응하며 야권 공조에 적극 나섰고, 민노당은 “내달 6, 7일 통외통위 차원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와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야권에선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비판도 이어졌다. 민주당 최인기 정책위의장은 “광우병 대책은 현재로선 ‘미친 쇠고기’를 먹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며 “이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홍보대사인지 한국 대통령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진보신당 관계자는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게 됐다’는 식의 어줍잖은 경제논리를 들이대는 이 대통령의 대응은 하책(河策) 중의 하책”이라고 비난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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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익 내세워 수비대형 與 "쇠고기 TV 토론회 하자"

한나라당은 야권의 쇠고기 공조가 꽤나 난감하다.

사정은 이렇다. 쇠고기 협상 타결에 대한 국민 여론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때문에 "국회에서 진상과 대책을 한번 따져 보자"는 야권의 청문회 개최 요구는 분명 명분이 있다. 이를 "정치 공세"라며 무작정 거부할 수만은 없다. 17대 국회까지는 의석 수에서도 한나라당은 열세다. 그렇다고 여당 체면에 야권에 질질 끌려 다니는 인상을 줘서도 곤란하다. 딜레마다.

강재섭 대표가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여ㆍ야ㆍ정의 정책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쇠고기 문제에 대해 TV토론회를 개최하자"고 역제의한 것도 이런 사정의 반영이다.

국민 여론도 문제다. 먹거리 문제 인 데다 축산농가의 반발 등이 얽히면서 민심이 묘하게 돌아간다는 게 당의 자체 판단이다. 그래서 이날 당 지도부는 작정한 듯 야당에 포화를 퍼붓고 나섰다. 강 대표는 "정확한 협상 내용을 알아보지도 않고, 정치 공세부터 펴는 것은 축산농가와 정부, 한나라당을 이간질하려는 무책임한 행태"라면서 "자칫 어렵게 합의한 4월 국회마저 흐지부지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어 "정쟁을 할 것이 아니라 정책이 해법"이라면서 "야권이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에 대해 퍼주기니, 자존심이니 하면서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정치 쟁점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쇠고기 수입 협상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해 오던 것"이라면서 "통합민주당은 그동안 팔짱만 끼고 방치하다가 협상이 타결되니 '굴욕적인 조공외교' '대미 퍼주기' 등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안 원내대표는 "이미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쇠고기 수입 자유화를 한 적이 있고 전 세계 96개국이 한국보다 더 완화된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면서 "민주당 논리라면 96개국은 굴욕적 조공외교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열릴 임시국회의 대정부 질문과 상임위에서 수입위생 조건이나 축산농가 지원에 대해 따져 물어야 한다"면서 "구시대적이고 악의적인 정치 선동은 중단하고 생산적 협의에 참여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쇠고기 시장 개방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속한 정책 마련을 정부에 거듭 촉구키로 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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