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관악경찰서. 존속살해와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김모(41)씨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지 14년 만에 죄를 털어놓은 김씨. 공소시효 만료 1년을 남겨놓고 검거되긴 했지만 김씨는 그때서야 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비극적 비밀의 시작
사건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의 아버지는 가정이란 곳에 무심한 사람이었다. 가장으로서 의무에도 관심이 없었다. 틈만 나면 아내(70)와 자식들을 때렸다. 따로 차린 살림에 생활비를 빼돌리기도 했다. 4월 초순 어느날, 당시 27세의 차남이었던 김씨는 서울 사당동 집에서 아버지와 술잔을 나누며 쌓였던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술에 취한 아버지가 자신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자 김씨는 흉기를 빼앗아 아버지를 찔러 살해했다. 김씨는 아버지의 시신을 자신의 방에 1주일 정도 감춰 놓았다가 시신을 훼손한 뒤 집 근처 재개발구역 공사현장의 건축 폐자재 더미 속에 내다 버렸다.
가족들이 짊어진 천형
가족들은 김씨 방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로 김씨의 아버지 살해를 직감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사실을 입밖에 내지 못했다. 가족들이 아버지 때문에 당해야 했던 참담했던 경험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한 김씨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김씨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 천형(天刑)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김씨는 2년 후 결혼 했지만 혼인신고도 못한 채 6개월 만에 이혼을 당했다.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 두고 지금껏 직업도 없이 전전했다. 아버지 살해 당시의 기억 때문에 술로 괴로움을 달랬다. 잠잘 때는 가위에 눌려 혼자서는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여동생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다 2005년에 이혼했고, 남동생은 사업에 실패해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김씨와 단둘이 살아온 어머니는 중풍과 당뇨병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 어머니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유죄 인정받을 수 있나
이 사건은 지난달 실종사건 재수사에 나선 경찰이 첩보를 입수, 수사에 착수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경찰은 주변 사람들을 탐문 조사한 끝에 김씨의 아버지 살해 정황을 확인한 뒤 김씨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 가족들도 14년 동안 천형처럼 가슴에 숨겨놓았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들 모두 직접 신고할 용기 없이, 그저 누군가가 밖에서 건드려서 터뜨려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듯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 가족들이 범행을 알고도 숨겼지만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다”며 “적극적으로 범행을 숨겨주었다 해도, 가족은 형법상 특례조항에 따라 범인은닉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이 사건은 김씨 진술 외에는 직간접 증거가 전무한 상태다. 최근 대전고법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어도 혈흔 등 간접증거만으로 살인혐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지만 이 사건에서는 간접증거조차 없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의 자백이나 가족들의 진술이 일관돼 공소유지에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강희경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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