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조 8,000억원 대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안건을 그제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한나라당이 국가재정법 상의 요건 미비와 정책수단의 부적합성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으나, 정부 뜻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새 정부 들어 당정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종래의 관행과 상식으로 볼 때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상반된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동전의 앞뒤처럼 긴밀한 정책조율 체제를 갖춰야 할 당정이 경쟁하듯 ‘마이 웨이’를 외치니 보기에 딱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통과된 ‘2007년도 세계잉여금 처리안’은 지난해 거둬들인 세금 중 쓰고 남은 15조 3,428억원을 지방교부세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산, 공적자금 및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사용하고 나머지 4조8,655억원은 올해 세입에 이입키로 했다. 사실상 이 규모로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뜻이다. 내수 및 고용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필요성을 누차 한나라당에 설명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자 행동으로 나선 셈이다.
예산처리의 칼자루를 쥔 한나라당은 몹시 불쾌한 눈치다. 물가와 작은 정부 역행 등 논란이 많은 사안인 만큼 인내심을 갖고 설득하고 이해시켜도 부족한 판에, 고압적 태도로 일관하며 공을 정치권에 넘긴 까닭이다. “백날 (안건을) 올려봐야 통과시켜 주지 않을 것이니, 꿈 깨라”는 원색적 발언이 나올 만도 하다. 일정대로라면 지금은 당정이 야당의 벽을 넘을 전략을 짜야 하는데, 감정이 앞선 양측의 주장이 내는 파열음만 요란하다.
정책 이니셔티브를 둘러싼 당정 파워게임의 양상으로 비화된 논란에서 먼저 탓할 것은 정부의 미숙하고 투박한 일처리 방식이다. 돌아가는 사정을 알면서도 안건 의결을 강행한 이 대통령의 태도도 석연찮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강박증은 알겠는데, 급하다고 우물에서 숭늉을 찾을 순 없는 법이다.
한나라당마저 “정부가 시장의 힘보다 권력의 힘으로 직접적 효과를 얻으려고 한다”고 우려할 정도라면 한 걸음 물러서 정세를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이나 초ㆍ중등 교육 자율화 파문 등은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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