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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언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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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언어폭력

입력
2008.04.24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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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한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천냥의 빚을 진다’는 경고다. 이래저래 쌓인 ‘천냥의 빚’ 때문에 이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D재혼정보회사에서 내놓은 자료가 눈길을 끈다. 결혼을 했다 이혼을 했고, 그래서 재혼을 준비하는 남녀 2,000명이 대상이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배우자’의 유형을 물었더니, 절대적인 1위가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사람(71%)’이었다. ‘도박에 빠진 사람(17%)’, ‘경제적으로 무능한 사람(10%)’, ‘바람기가 있는 사람(4%)’ 등은 그나마 견딜 수 있는 남편이고 아내였다는 얘기다.

■ 우리는 언어폭력에 둔하다. 욕설의 종류와 내용이 다양하고, 그 표현에 관대하기까지 하다. ‘말로 해도 될 것을 왜 (치고 받고) 싸우냐’는 말처럼, 말로 하는 폭행은 죄로 여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읽는 신문의 사회면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살인ㆍ폭행 기사의 대부분이 “~라고 말한 데 격분, 흉기를 휘둘러…” 등으로 시작되고 있다.

‘말의 약자’가 ‘말의 강자’에 대한 보복들이 흉기 사용으로 나타난 경우가 허다하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상관과 부하 사이처럼 말의 강자와 약자가 뚜렷이 구분된 관계일수록 언어폭력은 빈번하다.

■ 부부 사이에도 말의 강자와 약자가 있다. ‘부부 싸움(대부분 말싸움의 경우)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도 있는데, 상대의 말에 격분하거나 이혼소송까지 제기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말로 해도 될 일’이지 ‘치고 받고 싸울 일’은 아니었다. 최근 서울가정법원이 장기간 반복적으로 심한 욕설을 한 것은 이혼사유가 된다고 판결했다.

“심한 욕설은 언어폭력에 해당하고, 이는 인격적 모욕감을 느끼게 해 물리적 폭력 못지않게 상대방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고 했다. 기사화할 만큼 이제야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다.

■ 통계청이 21일 발표한 2007년 이혼현황을 보면 전체 건수는 약간 줄었으나, 55세 이상의 황혼이혼은 갈수록 늘어 7년 전의 2배나 됐다. 뒤늦게 이혼을 감행하는 이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인데, 절반 이상이 ‘성격이 안 맞아서’였다.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이 이혼소송 중인 부부를 조사한 자료에서도 “폭언ㆍ폭행 때문에 인격적 모욕감을 느껴서”가 절반이었다. 성격이 맞지 않아 폭언ㆍ폭행으로 이어지고, ‘말의 약자’는 점점 정신이 황폐해지게 된다. 어제 하루 가까운 이의 가슴에 비수(匕首)를 꽂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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