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 / 문예출판사
1916년 4월 24일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부활절 봉기’가 일어났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한 의용군ㆍ시민군이 시내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아일랜드공화국을 선포했다. 1주일 만에 450여명이 죽고 영국군의 진압에 3,500여명이 체포돼 그 중 지도자 15명이 처형당하는 등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부활절 봉기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결정적 분수령이 된 사건이었다.
더블린 출신의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던 시인 예이츠는 ‘부활절, 1916’이란 시에서 그날 평범한 시민에서 혁명아로 변한 더블린 사람들을 ‘무서운 아름다움이 탄생했다’는 표현으로 묘사했다. 예이츠를 비롯해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 등 아일랜드가 낳은 걸출한 문인들 중 한 명인 제임스 조이스(1882~1941)는 부활절 봉기가 일어나기 12년 전인 1904년 조국을 떠난 율리시스가 되어 있었다. 그는 37년간 이탈리아, 파리를 떠돌며 고향 더블린을 그리워하다 결국 스위스 취리히서 사망했다.
조이스가 더블린을 떠난 건 그 ‘마비 상태’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가 <더블린 사람들> 에 실린 15편의 단편 중 대부분을 쓴 것은 더블린을 떠나기 전후인 1904~5년이다. “내 의도는 우리나라 윤리사의 한 장을 쓰려는 데 있었다. 그 무대로 더블린을 택한 것은 이 도시가 마비의 중심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말대로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 에서 늙은 사제와 사춘기 소년, 밑바닥 인생과 소시민 등 중하층 더블린 민중들의 일상을 눈앞에 보듯, 냉혹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더블린> 더블린>
조이스가 본 더블린의 마비는 그가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이라고 했던, 아일랜드의 700여년에 걸친 식민상태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내가 더블린의 중심부에 이를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도시들의 중심부에 이를 수 있다. 특수성 안에 보편성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듯 그가 포착한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 오늘도 생생하게 읽힌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